[우희종의 '생명']기득권 집단과 사회 퇴행

2022.06.07 06:00:00 13면

 

지금도 안방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미드(미국에서 제작된 TV 연속 드라마) 중에는 생사가 오가는 긴박한 병원에서 의사들의 인간적 고뇌를 다룬 내용이 꽤 있다. 그런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하는 것이 우리라면 너무도 간단한 부탁이나 청탁에 접한 의사가 의사의 기본 윤리를 언급하면서 면허 취소를 걱정하는 장면이다. 개인 권리를 존중하지만,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 공적 역할이나 책임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향정신성의약품인 미다졸람과 전신마취제 등을 섞어 불법 투여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고, 더욱이 그 시신을 유기한 의사에게 취소된 면허를 되찾아 준 최근 판결이 논란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비록 중대한 과오를 범했지만 개전의 정이 뚜렷한 의료인에게 한 번 더 재기의 기회를 줘 자신의 의료기술이 필요한 현장에서 봉사할 기회를 주는 것이 의료법 취지와 공익에 부합한다"는 주장을 인용했다.사람을 죽인 해당 범죄로 인해 의사가 받았던 형량은 고작 징역 1년 6개월과 벌금 300만원에 불과했다. 그에 따라 면허 담당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그의 의사 면허를 취소했는데, 판사가 면허를 되살려준 것이다. 의사가 받은 형량의 경중을 넘어, 우리나라의 의사 면허는 철면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의료 범죄자인 의사가 반성하고 있으니 면허를 되돌려주라는 판사의 인식과 연대 의식도 놀랍다. 이런 상황은 보건복지위원회 김민석 위원장 등이 촉구한 의사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 재심의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불발된 것이나, 복지위 법안소위에서 통과 의결시킨 간호법 역시 의료계의 반발로 인해 법사위 전체회의에 포함되지 않은 상황과 맥락을 같이 한다. 2년 전 공공의료 부족을 위한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에 대한 의료계의 반대 행동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득권 유지를 위한 집단 목소리가 선진 사회의 일반 상식마저 넘어 작동하면서 사회를 퇴행시키는 일종의 적폐 문화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 변화의 진정한 장애는 다양한 구성 집단이 자신들이 누리고 오던 특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각종 기득권 고유의 논리를 사용해, 서로 보호해 주며 연대해 기존 틀 유지에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사회개혁에 늘 등장하는 분야인 정치나 사법 내지 언론만이 아니라 의료 분야도 그렇듯이, 누적되어 온 불합리한 사회구조와 계층 및 문화는 사회 전반에 있다. 이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과 시도는 언제나 강고한 기존 특권 집단인 판사, 검사, 의사 등의 연대를 통해 선진 사회로의 발목을 잡는다. 단지 무산되는 것을 넘어 심지어 역공을 당한다. 검찰 개혁을 내세웠던 지난 정부에서 오히려 검찰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음을 목격한 바 있다.

 

오랜 기간 내려오며 시대변화에 부응하지 못한 채 사회 변화에 저항하는 기존 특권 집단이나 계층은 기득권자들이기에 이들의 목소리는 크다. 하지만 사회 공공성에 대한 확고한 의지 각성이 있다면, 공사를 구분하고 공적 활동에 있어서 기존 집단이나 인물에 대한 특권 해체가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에서 제시되는 여야의 선거 구호만 보아도 철저하게 지역 기득권 강화를 내세우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우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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