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출퇴근에 도어스테핑…달라진 대통령의 보폭

2022.06.09 08:58:13 4면

[취임 한달] 일정·동선 실시간 노출…백화점·시장서 깜짝 등장도
'열린 집무실' 표방 속 협치·통합의 정치 등 과제

 

10일로 취임 한 달을 맞는 윤석열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정치신인으로서 여의도 문법을 깨고 대선에 승리한 뒤에는 아예 청와대 밖으로 나와 대통령의 문법을 깬 파격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임기 초 대중 정치인의 면모를 드러내며 권위주의를 내려놓은 적극적인 '소통' 이미지로 새로운 대통령상을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야권이 검찰편중 인사 등을 놓고 연일 비판하는 가운데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과의 협치를 통해 통합의 정치를 구현하는 문제는 과제로 남아 있다.

 

◇ 초유의 '출퇴근' 대통령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윤 대통령 집권 초 최대 이벤트였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하겠다며 북악산 기슭의 청와대를 시민들에 개방하고 자신은 용산 국방부 청사에 새 집무실을 차려 이른바 '용산 시대'를 열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윤 대통령의 말처럼 달라진 공간이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뿐 아니라 일하는 방식까지 바꿔놨다는 평가가 많다.

 

우선 대통령의 일정과 동선 노출이 빈번해졌다. 윤 대통령이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 집무실로 매일 통근하면서다. 한때 불거졌던 시민들의 교통 불편 논란도 비교적 잦아들었다.

 

장거리 이동 시엔 대통령 전용 헬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을 서울 도심에서 누구나 지켜볼 수 있다.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 경내에서만, 가까운 참모들조차 눈치채기 어렵게 은밀히 움직이던 전임 대통령들과는 보폭이 크게 달라졌다.

 

다음 달 초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을 새 관저로 개조해 이사한 뒤에도 '출퇴근하는 대통령' 모습은 계속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에 용산 청사 지하벙커인 국가위기관리센터를 가동했다.

 

청와대 경내 정원을 비롯해 본관과 비서동, 영빈관, 춘추관, 관저 등 수십 년간 권력자들만 누려온 '금단의 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줘 호응을 얻기도 했다.

 

현재 청와대를 대체 할 대통령실의 새 이름을 공모 중이다.

 

 

◇ 틀 깨는 소통으로 어필

 

최근 용산 집무실 근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용리단길' 맛집마다 윤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벽에 걸리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이 찾은 베이커리에서는 그가 골랐던 빵을 묶어 '윤 세트'를 신상품으로 내놨고, 일행이 즐긴 점심 메뉴가 연일 화제를 낳기도 한다.

 

대선 후보 시절 매 끼니 '혼밥'(혼자 식사하기)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 일부러 더 부각하는 전략적인 소통 행보로도 보인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도 담당 업무에 대한 언론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거듭 독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들을 '처음 만나는 국민'처럼 대하라는 당부다.

 

윤 대통령 스스로 틀을 깨는 파격 소통에 나서기도 한다.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외부 일정이 없을 땐 웬만하면 현관에 서서 기자들이 즉석에서 던지는 현안 질문에 답한다. 담당 기자들조차 대통령과 한번 대면하기 어렵던 과거와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미국 백악관식 공보 방안을 구상하라는 윤 대통령 지시에 국민소통관실 실무자가 아이디어를 냈고, 윤 대통령이 국내에선 유례가 없던 이 방식을 전격 채택했다고 한다.

 

리스크 관리 차원의 내부 반대도 있었지만, 홍보라인에서 "대통령이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아도 눈빛이나 걸음거리 자체가 메시지"라는 논리로 윤 대통령의 새로운 시도를 뒷받침했다.

 

주말에는 부인 김건희 여사와 나들이를 즐기기도 한다.

 

윤 대통령은 예고 없이 동네 백화점에 들러 구두를 사고, 붐비는 재래시장에서 먹거리를 고르는가 하면 편안한 복장으로 개방된 청와대를 찾아 시민들과 '셀카'를 찍었다.

 

이런 노력 덕분인 듯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의 첫 번째 이유로 '공약 실천'과 함께 '소통'이 꼽혀 눈길을 끌었다.

 

◇ '보여주기식 쇼'에 그치지 않으려면

 

윤 대통령은 지난달 국민대표 20명을 초대해 기념 시계를 선물했다. 퇴임을 앞둔 21대 국회 전반기 의장단을 초청해 환담하기도 했다.

 

뉴스에나 가끔 비치던 대통령 집무실이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한 모양새다.

 

매주 월요일 한 차례만 열리는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가 아니라도 수시로 참모들을 불러 대면 보고를 받고 '디테일'을 챙긴다고 한다.

 

보수 진영 대통령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지난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KTX 특별 열차를 편성해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과 참모들을 이끌고 광주를 방문한 일은 또 하나의 파격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여소야대의 불리한 조건 속에서 '거야(巨野)'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치에 별다른 묘수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회 시정연설에서 의회주의 존중을 강조하고, 야당 지도부와 만남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검찰 출신 편중 인사 논란 등의 여파로 정국은 여전히 험악한 분위기다.

 

윤 대통령은 앞서 야당 인사들을 향해 "퇴근길에 보통 사람들이 가는 식당에서 김치찌개에 고기 좀 구워놓고 소주 한잔하고 싶다"고 제안한 바 있다.

 

평소 보여주기식 '쇼'를 제일 싫어한다고 알려진 윤 대통령 앞에는 새로운 대통령상을 정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통합의 정치로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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