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온고지신] 손웅정

2022.06.15 06:00:00 13면

 

 

손흥민의 아버지다. 1962년생. 예순한 살. 환갑이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은퇴할 때까지는 매우 유능한 축구선수였다. 그 아들이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먹었다. 나는 그 아버지가 궁금해졌다. 그의 자서전을 찾았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책을 펼쳤다.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다." 


이 문장은 실은 성공한 아들들의 흔한 효도발언을 출판사가 광고카피로 뽑아 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초장부터 손웅정에게 빨려들어가는 것이었다. 자칭 '마발이 3류 축구선수'가 쓴 이 책이 오늘 나처럼 부실한 가장들은 물론 이 해괴망측한 시대를 내리치는 죽비였기 때문이다.

 

한 마라토너가 2012년 12월, 스페인에서 열린 크로스컨츄리 경기에 출전하여 2위로 달리고 있었다. 선두는 런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로 케냐의 아벨 무타이 선수. 그런데 그가 종점을 착각하여 멈추려 했다. 뒤따르던 스페인의 이반 페르난데스 아니야는 무타이를 추월하지 않고 손짓으로 결승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가 금메달을 따도록 도와준 것이다.

 

이에 대하여 1등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했느냐, 고 묻는 기자에게 아니야가 답했다.
"그가 이기고 있었을 뿐이다. 설령 내가 그를 제치고 우승했다 해도 그건 명예롭지 않다. 우리 어머니가 어떻게 생각하시겠나?" 아니야는 이로써 금메달 보다 열 배 더 빛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니야가 손웅정이다. 

 

2019년 토트넘의 원정경기인 에버턴 전에서 손흥민의 태클로 상대방 수비수 안드레 고메스가 발목골절상을 입었다. 손은 주저앉아 울었다. 벌칙으로 인한 손해 때문이 아니었다. 고메스가 선수생명을 잃을까 봐 두렵고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부자는 그를 위해 기도했다. 천만다행. 쾌차했다. 결국 판정은 번복되고 벌칙은 취소되었다. 

 

"상대가 넘어지는 걸 보면, 그 상황이 너에게 골찬스라 하더라도 공을 밖으로 차내고 사람부터 챙겨라. 너는 축구선수이기 전에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한 말이었다. 

 

축구는 전쟁을 게임으로 바꿔놓은 엔터테인먼트다. 본질은 격렬하고 치열한 패싸움이다. 손웅정은 이 축구에 휴머니즘과 품격의 금테를 둘렀다. 손흥민은 누구나 비슷한 기본기, 체력, 승부욕 외에 아버지가 인생을 걸고 가르친 바로 저 겸손, 성실성, 낙천주의, 팀스피릿 등의 집합체다. DNA다.

 

손웅정은 이 정도 수준 높은 인문교양서를 낼만큼, 아들을 잘 키워 세계 최고로 우뚝서게 할만큼 비범한 인물이다. 자신을 고도의 지성으로 끊임없이 진화시켰다. 1년에 100권의 책을 3색 펜으로 줄 치고 메모하며 삼독한다. 그 엑기스를 아들에게 먹인다. 산삼보약이다.
 
'손흥민 싸커'는 손웅정의 옥토에서 생성되는 가치들을 자양분 삼는다. 매번 놀랍지만, 고로 당연한 예술이다.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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