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당신들이 왜 미안하단 말인가?

2022.07.06 06:00:00 13면

 

기억력의 퇴화인가? 윤석열 대통령의 첫 외교무대 데뷔라고 할 수 있을 NATO정상회의 방문에서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하긴 대통령 스스로 집단군사동맹기구인 NATO정상회의에서 15분 동안 15개국 정상에게 원전세일즈를 했다고 하니 ‘노룩악수’를 제외하곤 기억할만한 것이 있을리 없다. 대신 스포트라이트는 김건희여사의 1억원대 목걸이와 1600만원대 팔찌 등에 쏠렸다. 박지원 전국정원장은 “영부인의 패션은 국격”이라며 “꿀리지 않고 멋있었다”고 추켜세웠다. 언론은 한술 더 떠 ‘우크라룩’이니 ‘외교패션’이니 하면서 추앙을 더했다. 김정숙여사는 2만원짜리 국산 브로치를 달았다가 숱한 언론들로부터 무슨 돈으로 2억원대 명품을 샀느냐며 난도질을 당했다. 나는 궁금하다. 그때의 기자와 지금의 기자가 같은 호모思피엔스종이 맞는지.. 이건 태세전환 차원이 아니고 기득권동맹의 추악한 이중잣대다.

 

말이 나온 김에 명품이라면 필리핀 이멜다여사를 빼놓을 수 없다. 남편 마르코스대통령이 20년 동안 7만명을 투옥하고 3200명을 살해하며 철권통치를 휘두르다 86년 피플파워혁명으로 쫓겨날 당시 이멜다여사는 미군용기 두 대를 빌려 자신의 금괴와 보석을 하와이로 실어날랐다. 미처 못가져간 구두 3천 켤레, 1200벌의 드레스와 1500개의 핸드백이 말라카낭궁에서 발견되었다. 그녀는 최근 93세 생일을 맞아 필리핀 전역에 축하광고가 내걸렸다. 아들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였다. 아들은 아버지 마르코스의 통치 기간에 나라가 발전했으므로 사과할게 없다고 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가장 큰 힘이 된 것도 이멜다가 빼돌린 부정축재 자금이었다. 이멜다는 빈민가에서 현금뭉치를 들고 다니며 지폐를 나눠주는 것으로 환심을 샀다. 아들은 과거 선거할 때 유세차에서 돈뭉치를 길거리에 뿌려대었다. 데쟈뷔랄까? 우리도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았었다. 지금은 명품으로 치장된 영부인 팬덤이 생긴다. 이멜다가 말했다. “빈민가를 방문할때면 더욱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야하죠.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어둠속에서 별을 찾기 마련이니까요”

 

다른 세상, 달아오른 철판을 녹여 배를 만드는 조선소의 여름은 그야말로 지글지글 끓는 염천지옥이다. 역대급 초여름 폭염이 덮친 거제에선 조선하청노동조합의 유최안 부지회장이 가로-세로-높이 1m(1㎥) 쇠창살에 몸을 가두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들의 요구는 ‘임금 원상회복’이다. 조선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지난 5년 동안 하청 노동자 임금이 30%가량 삭감되었다. 조선업이 다시 호황을 맞이했으면 5년 전 수준으로 임금을 되돌려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수십년 일한 숙련된 조선노동자가 최저임금을 받는 열악한 현실 앞에서 언론은 조선경기 호황에도 일할 사람이 없어 수주를 포기해야 하는 실정이라 한탄한다. 일감은 넘쳐나도 임금은 여전히 깎아서 주겠다면 일하러 오는 사람이 이상하다. 파업 때문에 산업은 망하지 않는다. 늘 산업은 경영진의 탐욕 때문에 망했다.  

 

억대의 목걸이를 걸치고 돋보이고자 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미안해하지 않는다. 이를 추앙하는 언론도 국민에게 미안하지 않다. 낮은 세상에서 쇠를 녹이는 노동자는 일할 수 없음이 자뭇 미안하다. 그들이 내건 현수막이 내 가슴을 친다. “국민여러분 미안합니다. 지금처럼 살수는 없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왜 미안하단 말인가? 울컥한 마음 가눌 길 없어 모금계좌 우리은행 1005-603-022783(예금주: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노동조합)으로 작은 성의나 보태야겠다. 같이 비를 맞는 심정으로..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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