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온고지신] 그날이 오면

2022.07.07 06:00:00 13면

 

 

"고난의 역사! 한국역사 밑에 숨어흐르는 바닥 가락은 고난이다. 이 땅도 이 사람도, 큰 일도 작은 일도, 정치도 종교도 예술도 사랑도, 그 무엇도 다 고난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말 듣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끄럽고 쓰라린 사실임은 어찌할 수 없다."ㅡ함석헌(1901~1989)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중에서.

 

8.15 광복과 다름 없던 '80년 서울의 봄'은 그 해 5월, 전두환 일당이 광주를 피로 물들이면서 겨울공화국으로 되돌아갔다. 신군부의 12년 만행은 짙은 살의의 시간이었다. 그후 87년 6월 시민항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는 문민정치의 싸구려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까지 거창하고 유혹적인 구호로 시작했지만, 아는 바대로 예외없이 끝은 좋지 않았다. 씨알들이 끝도 없는 고난의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요즘은 윤석열 정치에 대한 불편함과 우려가 뒤섞인채 연관된 기억과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나날이다. 내 주변의 착한 시민들 다수가 비슷한 입장이다. 신명을 잃은채 집단적으로 무기력 증세를 보인다. 그 그룹의 폭주 때문만도 아니다. 내 경우는 문재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반이다. 참 힘들다. 

 

 

주말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숲속을 걷다가 1930년대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심훈(1901~1936)의 '그날이 오면'이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에 머리로 들이받아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울리오리다.
....
....."

위의 '그날이 오면' 이후, 50년이 또 지난 뒤(1980년대) 제2의 '그날이 오면'이 만들어졌다. 그 노래는 또다시 30년 넘도록 엄숙하고 장엄하게 불리고 있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

함석헌과 심훈의 '그날'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일이었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왔다. 그러나 이내 6·25 형제간 내전으로 금수강산은 지옥이 되었다. 그 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나쁜 정치 40년은 일제의 잔학한 36년 식민지배를 능가하는 악마의 시간이었다. 그 셋의 비극적 말로(末路)는 마치 사전 제작된 드라마 같았다. 경술국치(1910년) 이후 100년도 더 지났지만, 그 정치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갈망(渴望)은 절망적이다. 그래서 안스럽다. 구슬픈 숙환이다.

그날, 과연 오고 있는가. 정말로 오기는 오는 건가.


아니라면, 지금은, 우리가, 또 다시, 지옥으로, 건너가는 시간인가.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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