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에서] 우리가 만드는 수학여행

2022.07.18 06:00:00 13면

 

나는 숙박형 체험학습 반대론자에 가깝다. 반대하는 이유가 대단히 많은데 가장 크게 작용한 게 어린 시절 겪었던 수학여행이 지옥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낮까지는 평범한 체험학습인데 저녁이 되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탈이 벌어졌다. 누군가는 술을 텀블러에 담아서 오고, 다른 누군가는 캐리어 숨은 공간에 소주를 넣어왔다. 밤이 되면 온갖 일탈이 벌어졌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 숙취에 절여진 채 전세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가장 끔찍했던 체험학습의 한 장면은 중학교 수학여행 첫째날 밤에 친구가 만취해서 똑같이 만취해서 복도를 돌아다니던 교사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던 모습이다. 아무리 소지품 검사를 해도 무언가를 귀신같이 숨겨오는 아이들을 다 잡아낼 수 없었다. 나도 우리 방 분위기에 휩쓸려서 일탈을 함께 저질렀고 인생의 커다란 흑역사로 남았다.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을 경험한 셈이다.

 

수학여행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도 야간에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교사가 다 막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닫힌 문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교사는 알 수 없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몹시 부담스럽다. 교사들이 밤마다 순찰을 돌며 아이들을 재워도 눈이 초롱초롱한 친구들은 잠을 자지 않는다. 잠들지 않는 아이들은 예측할 수 있지만 막을 수 없는 사건들을 일으킨다. 간단하게는 밤에 베개 싸움을 하다가 발가락 골절되기부터 심각한 사건으로는 눈에 장난감 화살을 쏴서 실명시키는 일까지 있었다. 이런 걸 보면 무서워서 숙박은 피하고 싶다.

 

그럼에도 올해에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아이들이 너무너무 가고 싶어 하니까, 아이들에게 소중한 경험이니까, 코로나 때문에 체험학습도 못가다가 졸업하면 얼마나 안타깝냐, 등등의 이유로 1박 2일 수학여행을 추진하게 되었다. 업체에서 짜주는 관광 일정이 아니라 무려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수학여행이다. 6학년 아이들 8인이 한 조가 되어서 1일 차 때 정해진 지역 안에서 자유여행처럼 돌아다닌다. 학교에서 출발해서 지역으로 이동할 때 어떤 교통수단을 탈지, 밥은 무엇을 먹을지, 관광지는 어디에 갈지를 조사해서 계획을 세운다. 교사는 한 조에 한 명씩 따라다니면서 아이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2일 차에는 일반적인 수학여행 방식으로 구경하다가 학교로 돌아온다.

 

어제는 수학여행 떠날 지역을 정하는 날이었다. 사전에 원하는 여행 지역을 추렸는데 후보로 부산, 여수, 전주, 인천, 서울이 정해졌다. 1박 2일로 갈 수 있는 코스를 정하라고 했지만, 체력이 좋은 아이들은 부산이나 여수까지 문제없이 갈 수 있다고 외쳤다. 5개의 장소 중에서 한 곳을 선정하기 위해 지역별로 팀을 꾸려서 ppt를 만들어서 발표하고, 6학년 전체가 투표해서 갈 장소를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자료조사부터 ppt 만들기, 발표 대본 쓰기까지 아이들이 직접 진행했다.

 

어른들이야 여행 갈 때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어디를 어떻게 갈지 정하는 게 일상적인 행동이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엄청난 경험으로 보였다. 장소를 이동할 때 카카오 맵이나 네이버 지도를 사용하면 쉽게 검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았고, 코레일 사이트에서 기차 시간을 검색하거나 고속버스를 알아보는 것도 처음 해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첫 경험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귀여웠다.

 

지역 선정 수업을 진행하며 가장 좋았던 건, 방학을 앞두고 어수선했던 교실 분위기가 몰입의 도가니가 되었다는 점이다. 요즘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친구들이 많았다. 내가 교과 내용을 설명하면 동시에 잡담을 시작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다른 친구들이 발표하는 내용도 듣지 않고 그림을 그리거나 몰래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멍하게 초점 없는 눈빛으로 허공을 보고 있거나.

 

자신들이 선택한 지역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수업은 발표 자료 제작부터 발표까지 도중에 딴짓하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 특히 지역 선정 발표 때는 전원이 집중해서 내용을 들었다. 수업 내용이 삶과 연결되니까 아이들이 경청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수업 태도가 좋았다. 매 수업을 삶과 연결하기는 어렵겠지만 교사가 준비하는 만큼 아이들이 따라온다는 걸 실감했다. 끝나지 않은 코로나 때문에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지만 이왕 추진하기 시작한 거 무사히 진행되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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