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 나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2022.07.19 06:00:00 13면

 

 

 

여름이 깊었다. 에어컨 환경이 좋은 도서관으로 가는데, 인도블록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지렁이 사체가 눈에 띈다. 구리철사 토막인가 싶었다. 멈춰서 보니 지렁이 사체가 분명하다. 한 생명의 계절적 희생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어느 신문에서 김형석 씨가 쓴 ‘100년 산책’을 읽게 되었다. 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워싱턴 DC 부근 마운트버넌이라는 곳에 있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저택과 농장과 그의 묘를 보고 소개한 글이다. 생전의 워싱턴은 자기를 내 농장 집 내가 지정한 장소에 그를 묻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국회의사당으로 옮기지 못하고 그의 유언대로 자기 저택 왼쪽 돌들이 쌓여 있던 경사지에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주변의 간곡한 연임 권고를 거부하고 사저로 돌아와 살았을 때다. 찾아온 손님들이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면 워싱턴은 ‘나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지금 백악관에 계십니다. 이름만 부르기가 어색하면 ‘파머(farmer농부)’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살아 있을 때 창고 비슷하게 사용하던 건물 안에는 그의 애용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가 바이블을 얼마나 애독했는지를 엿보게 한다고 했다. 섬기는 사람이 참다운 지도자요 아메리카의 정신적 원천임을 암시해 준다고 노철학자는 깨우쳐주고 있다. 덧붙여 김형석 씨는 조지 워싱턴이나 벤저민 프랭클린이나 지극히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런 사람들이 아메리카를 건설했다고 하면서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에 교회와 대학이 건설되었고 정치지도자보다 사회지도자들이 나라를 건설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끝으로 그는 지금까지 열 명의 우리나라 대통령과 함께 지냈다고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느 대통령의 무덤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도 도산 안창호의 묘지를 찾아갈 때가 있다고 한다. 도산은 정치계에 몸담고 살면서도 국민계몽과 함께 국민의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어서 그는 최근에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과 시설이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는 것과 역대 대통령들이 무궁화대훈장을 셀프 수여했다는 사실이라고 적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생각이 깊어져 갔다. 지렁이가 죽어가는 불볕더위 속에서의 노동자 농어민들의 삶, 바다 건너 외국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젊은이들, 그런데 뉴스에서는 어느 당 대표가 징계를 당해 사퇴해야 하느니, 안 하겠다느니 하고 있었다. 바다 건너 섬나라에서는 죄를 짓고도 참회할 줄 모르는 인물 ‘아베’가 일본인 총탄에 목숨이 끊어지고 있었다.

 

그때 나는 다니엘 튜터가 우리나라를 두고 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에서 ‘선비’의 유산을 되살려 일본의 ‘사무라이’보다 훨씬 훌륭한 인간상을 우리 문화 전통의 아이콘으로 구현하라고 했던 문장이 떠올랐다. 언제쯤 한국의 대통령과 정치인 이미지에서 ‘철학적 고민과 겸손한 삶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을지. 기다려 볼 일이다.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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