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배의 공동선(共同善)] 잊혀진 항일투사들 복권(復權)부터 해야

2022.09.14 06:00:00 13면

 

 

1920년대 이후 식민지 하 우리 민족의 항일운동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운동으로 분화되었다. 반제, 반식민주의 투쟁에서 독립운동 세력의 자연스러운 사상적 발전이었다. 1920년대 말 좌우합작 단체인 신간회가 결성된 것은 식민지 해방운동과정에서 민족모순의 해소가 계급모순에 앞선다는 민족통일전선 운동의 성과였다. 진보적 유학자였던 단재 신채호가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 다시 무정부주의자로 노선을 바꿔갔던 것도 그런 시대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그 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발발과 함께 정세가 불리해진 국내 독립운동 세력은 중국 국민당 또는 공산당, 코민테른에 가담한 항일운동으로 그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그러나 이들의 목표는 이념 추구가 아니라 오로지 조국 해방 하나였다.

 

해방 이후 이들 세력은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한 목표를 향해 다시 뜻을 모았고 이 운동은 민중의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극단에 치우지지 않았던 송진우 김규식 여운형 안재홍 조소앙 김원봉 송진우 이여성 김병로 등 중간지대의 수많은 지도자들이 대거 통일정부 수립운동에 나섰던 것이 그 증거이다. 이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된 것은 미소 양국의 방해와 극단주의자인 이승만과 공산당 계열이 이들을 경쟁적으로 제거하면서부터다. 이후 통일운동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북 간 불신과 반목은 한층 강화되었던 것이다.

 

분단 이후 남북 정권은 체제와 이념을 내세워 독립운동가들을 차별해 왔다. 그 결과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기억되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자신들 편이 아닌 이를 제거하거나 숙청한 것이 이들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선열이 벌였던 해방 이전의 운동도 엄연한 우리 역사이고 독립운동이요, 통일운동이다.

 

분단 70여년의 세월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긴 세월이다. 항일 선열들의 피나는 노력이 좌절되고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오늘날까지 가족과 생이별한 남북 이산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은 훨씬 가중되어 왔다. 이들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살다가 해마다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분들 삶의 배양토는 서울이고 부산이며, 대전, 광주일 것이고, 이북의 평양, 함흥 원산, 정주 해주 개성일 터이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회담을 정부가 제의했다는데 나는 남측이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심사기준’부터 폐지하는 것이 민족 화해의 첫걸음을 떼는 방도라고 본다. ‘해방 후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 또는 동조한 경우에는 현저한 공로가 있더라도 독립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조항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조국의 광복과 통일을 위해 뜨거운 젊은 피를 바쳤던 분들을 함부로 이념의 잣대로 모욕하는 한 민족의 화해는 요원하다.

 

지난달 도서출판 푸른역사에서 ‘독립운동 열전’이 발간했다. 주요 서점의 역사분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니 뜻 깊다. 이 책이 특별히 반가운 것은 잊혀졌던 많은 중도 사회주의 항일투사들을 대거 발굴해 소개했다는 사실이다.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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