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지지리 못난 잡초

2022.10.13 06:00:00 13면

 

 

 

목에 떨어졌다. 절묘한 추락이다. 콩알만 할까. 옷깃을 피해 떨어진 빗방울이 눈물 되어 목을 타고 흐른다. 가을을 견뎌낸 것들은 모두가 이 모양이다. 하물며 영글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들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목을 타고 흐르던 것이 체온과 하나가 된다. 36.5°C로 데워진 빗방울은 더 이상 빗방울이 아니다. 마당에 떨어지는 가을비에 눈길이 멈춘다. 뭉클 피어오르는 흙먼지 따라 가을이 남긴 마지막 냄새가 부서진다. 가는 님을 붙드는 눈물바람이 저러할까. 볼수록, 세상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시절이든 인연이든 운명이든 마찬가지다. 마침내,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고야 만다.

 

불평하지는 말기로 하자. 우쭐이나 거만에도 유통기한은 있어서, 끝 가는 데 없이 거들먹거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생각할수록 다행한 일이 아닌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본으로도 구매할 수 없는 세월이라니. 재생버튼을 누를 수 없는 늙음이라니. 다 쓰고 망가져 발밑으로 흩어짐이라니. 고치고 다시 쓸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사람은 한없이 평등하지 않는가. 연민이라거나 긍휼 같은 것도 어쩌면 자기만족일지 모른다. 내가 머물고 있는 ‘백련재 문학의 집’의 길고양이만 해도 그렇다. 까망이든 노랑이든 이름 붙이고 불러주는 게 사랑일까. 마른 멸치 몇 개로 문 앞을 기웃거리게 하는 순간, 길고양이로서의 생명은 끝나고 마는 것을.

 

야생의 본능을 버리고 손쉬운 먹잇감에 길들여진 고양이는 더 이상 길고양이일 수 없다. 발톱을 세우고 산과 들을 누비는 대신 마룻바닥을 긁으며 먹이를 구걸하는 고양이는 길고양이가 아니다. 길고양이를 길고양이답게 살게 하지 않고 애꿎은 먹이 냄새로 동냥하게 만드는 나의 알량한 연민은 사랑일 수 없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다. 모독인 줄 빤히 알면서도 그 짓을 멈추지 못하는 나의 알량한 자기만족을 어찌해야 좋을까. 길들여지는 것처럼 서글픈 일은 없다. 밥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누군가의 발밑에 조아리는 머리처럼 안쓰러운 것이 또 있을까. 밥을 미끼로,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세상살이처럼 쓸쓸한 일이 어디 있을까.

 

돈 없이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세상이다. 법도 도덕도 윤리도 돈 앞에만 서면 휘청거린다. 먹고 살아야한다는 절박 앞에서, 양심은 내다 버려야 할 폐기물 목록의 우선순위가 된 지 오래다. 그걸 빤히 알면서도, 주먹 속에 희망이라는 풍선을 꼭 쥐고 놓지 않음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모두 사람이라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방송되었던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 속 캐릭터처럼. 숨죽이고 이웃의 아픔을 엿듣는 소시민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아픔과 설움을 좌표 삼아 밥을 딛고 꿈으로 향하는 아저씨 아줌마들이기 때문이다. ‘형제청소방’과 ‘정희네’와 ‘휴계조기축구회’로 불리는, 지지리 못난 잡초들이기 때문이다.

 

비 온 뒤 밤하늘은 낮보다 높다. 신에게로 다가서기 위해 십자가는 저리도 높은 곳에서 찬란할까. 낮게 깔린 구름 너머로 보름달이 건듯하다. 빨간 불을 깜빡이며 비행기 하나가 밤하늘을 가른다.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보름달은 땅에서 올려다 본 그것보다 아름다울까. 길고양이 울음소리가 마당에 뒹군다. 겨울은 아직 밤하늘 너머에 있다. 

고향갑 mono316@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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