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에 줄어든 온정…무료급식소·연탄은행 '찬바람'

2022.10.23 10:51:05

식재료 값 올라 운영비 부족…겨울 앞두고 연탄 기부도 줄어
사회복지관·푸드뱅크 후원도 감소…"올해가 가장 빠듯하다"

 

"물가가 올랐다고 반찬을 뺄 수도 없고 식사량을 줄일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분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식사인데 우리가 감당 안 될 때는 성금을 더 모을 수밖에 없지요."

 

대전역 앞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노숙인 자활보호시설 '벧엘의집'은 최근 크게 오른 식재료 값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기, 생선, 채소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식재료 가격이 20%가량 치솟았다.

 

원용철 벧엘의집 목사는 23일 "지난달에는 예산이 부족해 컵라면으로 배식을 한 적도 있었다"고 푸념했다.

 

날씨가 더운 여름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지내던 노숙인들이 추위를 피해 대전역으로 모이는 겨울에는 급식소가 더 붐비기 마련이다.

 

원 목사는 "당장 겨울이 되면 쪽방촌에 계신 분들에게 연탄도 배달해 드려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한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경기침체에 물가상승까지 겹친 여파로 소외 계층을 향한 온정이 식고 있다.

 

특히 물가 급등으로 무료급식소 식재료 값이 크게 오른데다 돕겠다는 봉사자도 줄고 있어 설상가상이다.

 

광주에 있는 무료급식소인 '사랑의 식당'도 최근 감당이 안 되는 식자재값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곳은 찾는 이는 대부분은 무료 점심 한 끼로 하루 식사를 해결하는 노인들이다.

 

이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늘더라도 노인들이 좋아하는 고기반찬을 줄이기도 어렵다. 대신 찌개나 볶음용으로 묵혀놓은 김치를 반찬으로 내놓고 배추 구매 횟수를 줄이는 등 운용의 묘를 살릴 수밖에 없다.

 

식단 짜기만큼 시나브로 느는 장기 후원자의 이탈도 근심거리다. 한 달에 50명 안팎인 후원자 중 5년 이상 발 도장을 찍은 장기 후원자가 최근 들어 매달 서너 명꼴로 떠났다.

 

사랑의 식당 사무국은 새로운 후원자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불황 탓에 1인당 4천원인 광주시 보조금으로 운영비 대부분을 충당하는 형편이다.

 

김광엽 사랑의 식당 사무국장은 "대부분 홀로 사는 어르신들께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후원이 꾸준히 이어지도록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무료급식소뿐 아니라 연탄 은행에도 최근 들어 따뜻한 손길이 크게 줄었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집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이 단체 산하 지역별 연탄은행 창고에 보관된 연탄은 1만 장가량으로 지난해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쌀쌀해진 날씨에 "연탄은 언제 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 노인들의 연락은 늘고 있어 텅 빈 연탄 창고를 바라만 봐야 하는 연탄은행 직원들의 마음도 편치 않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2020년 기준 700원이던 연탄값이 올해는 850∼900원으로 올랐다. 고지대에 연탄을 배달하면 1장당 가격이 1천200원까지 뛴다.

 

올해 경기가 나빠 내년부터는 연탄 기부를 줄이겠다는 기업후원자들도 잇따르고 있다.

 

춘천연탄은행의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이후 연간 5천명에 달하던 자원봉사자가 최근 1천여 명으로 급감했고, 200여개 단체의 후원도 절반 이상 줄어든 상황이다.

 

윤국춘 전주연탄은행 대표는 "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후원금액을 절반으로 줄이는 분들이 많다"며 "추위가 풀리는 내년 3월까지 빈곤층들이 충분하게 연탄을 땔 수 있도록 많은 분이 온정의 손길을 나눠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복지관과 푸드뱅크에 이어지던 후원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면 함께 뜸해진다.

 

보통 이맘때면 겨울용품 기부가 들어오기 시작하지만, 올해는 기부 절차를 문의하는 전화조차 드물다.

 

유성균(48) 대구 달서구 본동 기초푸드뱅크 팀장은 "15년간 푸드뱅크를 운영했는데 올해가 가장 빠듯하다"며 "작년과 비교해 기부 물품과 후원금 모두 절반 가까이 줄어든 상황이라 이번 겨울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걱정이 한가득하다"고 말했다.

 

대구시 서구 제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최태용(33) 사회복지사도 "올해만 20분 넘게 정기후원을 끊었다"며 "정기적으로 통장에서 돈이 나가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유가 대부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정칠 부산연탄은행 대표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온정의 손길을 내밀어 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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