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고성(孤聲)] 정치가 사라진 자리

2022.11.04 06:00:00 13면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참사는 세월호 참변 이래로 또다시 전 국민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주었다. 일주일 가까이 지났음에도 당시의 참혹한 사진과 영상이 떠나질 않는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나라가 되었는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 자랑스러웠던 대한민국의 국격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 착찹하기 그지없다. 일제하 3·1혁명이 세계 곳곳에 각인된 이유는 그 시위 방법이 평화적이고 비폭력이었기 때문이었다. 2002년 월드컵 때 전국의 거리를 붉은 티셔츠로 물들이며 열광했지만, 쓰레기 하나 없이 돌아가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인 우리였다. 촛불혁명 때도 민심의 거대한 물결과 함성이 터졌지만 차분했고 질서정연했다. 전 세계가 부러워했던 민주시민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순간에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혹자는 서양귀신 놀이에 빠진 청년들을 비판한다. 외국 것이라고 탓하자면 크리스마스는 왜 명절이 되었고, 불꽃놀이는 왜 하고, 부처님오신 날의 연등행사는 또 왜 하는가. 문화는 자연스럽게 전파되고 그 나라의 특성에 맞게 변용되어 흡수되고 재창조되는 것이다. 핼러윈 축제도 그들 MZ세대에게는 이미 유치원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놀이였다. 우리가 호되게 질타해야 할 대상은 무능함의 정수를 보여준 정부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행정안전부장관, 서울시장, 용산구청장, 경찰청장, 용산경찰서장 등 참사의 책임자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정치를 무시하고 불신하는 대통령의 인식에 있다. 그는 아직도 정치인이 아닌 철저한 검사 같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 집단의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해 다른 주장들을 조화시켜 화합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정치이지만, 대통령은 오로지 조사, 압수, 압박, 수사만이 있는 듯하다. 잘 숙련된 정치인이 와도 어려운 대통령 비서실은 측근 검사들로 채웠고 내각 대부분도 검사 아니면 비정치인들이다. 정치불신은 야당관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주사파와는 협치할 수 없다는 공언은 야당은 반국가세력으로 곧 수사대상이라는 선언이다. 야당 없는 국정연설을 하면서도 의기양양하다. 측근 중의 측근인 법무장관은 국회의원의 의혹 질문에는 건건이 발끈하며 뭘 걸라고 한다. 시장의 야바위꾼보다 못한 자들이 정치인이라는 인식이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로 한 사회의 건전함과 건강성을 부여하는 장치다. 그 중심은 국민이고 방법은 여당과 야당의 협치이건만 현재는 정치의 부재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시스템에 의해서 움직이기보다는 하나같이 위로 향하는 충성심에 의해서 작동한다. 정부의 모든 행정이 이러하니 이태원 위기 신고전화를 무시한 경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화와 타협의 정치가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것들에 의하여 국가가 모두 제 자리와 역할을 잊었다. 그사이에 애꿎고 소중한 청년들의 숨이 멈췄다. 삼가 고인들의 희생에 명복을 빈다.

임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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