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레테(Lethe)의 장난질

2022.11.09 06:00:00 13면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트린 이태원 압사 참변의 애도 기간이 지나자마자 정치권의 죽기살기식 정쟁이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네요. 여야 정당이 쏟아내는 악담을 듣노라면, 이 사람들에게 정말 이태원에서 횡액을 당한 희생자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요. 앞서서 책임을 져야 할 쪽은 어떻게 하면 악재를 극복해 볼까 전전긍긍이고, 야권은 때 만난 듯이 물어뜯는 하이에나 떼와 조금도 다르지 않군요. 


일단 드러난 사실만으로 논하더라도, 이태원 비극은 안전관리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진 국가의 계통 부실이 빚어낸 처참한 결과물이에요. 국민 안전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진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은 어떻게든 민심이 용납할 수준의 책임 판단에 있어야 할 거예요.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 상황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대형 참사를 다루는 일도 정상적인 과정으로 흘러가지 않네요. 뭐든 다 끌어다가 음모론 밧줄로 얽어놓고 삿대질부터 해대는군요. 


천박한 ‘아무 말 대 잔치’처럼, 온갖 협잡을 다 동원하여 참사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찍어 붙이는 비이성적 선동질에 여념이 없네요. 대형사고 원인을 놓고 현 정권 탓이니, 직전 정권 탓이니 하고 힐난하는 행태는 안타깝게 희생되신 156명 고귀한 영령들 앞에서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짓 아닌가요? 온 세계에 대한민국이 야만국임을 증명해버린 이 치명적 사고에 즈음하여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지도자는 대체 누구인가요?


요즘 돌아가는 판을 보니 망각의 여신 레테(Lethe)의 장난질이 진작부터 시작됐다는 느낌이에요. 정치인들은 눈을 벌겋게 뜨고서 제단에 바칠 희생양들을 누구로 할 것인가 싸우고 있어요. 웃기는 것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영역과 관련이 있는 자들은 쏙 빼놓고 정적 상대방과 연관된 인물들만 단두대에 밀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죠.


대형사고가 터질 적마다 나타나는 이 치졸한 풍경이야말로 이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예요. 책임자들을 찾아 용수갓을 씌워 민중 앞에 돌팔매 과녁으로 세워놓고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딴짓만 하는 게 우리 지도자들의 대처법이잖아요.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침몰 참극 이후 줄곧 그랬어요. 그 처단이 마치 온전한 대형사고 방지책이라도 되는 양 온 국민을 속여왔죠. 


그때마다 쏟아낸 위정자들의 수없는 맹약(盟約)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왜 이 나라가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인가요? 혹시나 죽은 뒤 저승길에서나 마셔야 할 레테의 강물을 미리 떠다가 온 국민에게 먹이는 무슨 용빼는 재주라도 부리는 건가요? 이번에는 그렇게 맥없이 당하지 말았으면 해요. 참사를 빌미로 정적에게 치명타를 가하려는 천박한 행동들부터 부디 멈춰주세요. 다시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 지독한 ‘안전불감증’ 고질병부터 함께 뜯어고치자고요, 제발.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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