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감학원' 진상규명 노력 이하라 "진짜 역사 알리고 싶었다"

2022.11.13 09:06:00

약 40년 걸쳐 쓴 자전적 소설로 선감학원의 아동 폭력 실태 알려
한일 역사 갈등에 쓴소리…"법률보다 앞서 인도적 입장이 있다"

 

일제가 세운 선감학원에서 벌어진 조선 소년들에 대한 가혹행위를 알린 일본인 이하라 히로미쓰(井原宏光·87) 씨는 "한국에서, 한반도에서 예전에 일본인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을 지금의 일본인이 알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요새 일본인은 대부분 한국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대충 싫어하게 되거나 한다"며 선감학원에서 벌어진 아동에 대한 폭력을 다룬 자전적 소설 '아! 선감도'를 쓴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이하라씨는 '아! 선감도'를 쓰고 선감도에 관해 증언한 공적으로 불교인권위원회가 수여하는 불교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연합뉴스의 전화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선감학원은 1942년 일제가 부랑아를 격리 수용하려고 서해의 외딴 섬인 선감도(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 세운 소년 강제 수용소로, 광복 후에도 존속하다 1982년에 폐원했다.

 

이하라씨의 부친은 조선총독부의 명령에 따라 일제 강점기 함경남도 원산의 일본인 학교 교장을 지내다가 선감학원 교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초등학교(당시 소학교) 2학년이던 1943년 여름부터 4학년이던 1945년 여름까지 아버지와 함께 선감도에서 지내며 선감학원에 수용된 조선인 소년들에게 가해진 폭력을 목격했다.

 

당시 목격한 내용을 토대로 하되 약간의 허구를 가미해 1989년 '아! 선감도'를 출간했다. 나중에 한국어로도 번역 출간됐다.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하라씨는 "(수용된) 아이들은 생활이 괴롭고 먹을 것이 없어서 선감도에서 달아나곤 했다"면서 "해협을 건너 대부도로 헤엄쳐 간 아이들이 남의 집 부엌에서 밥을 먹다 잡혀서 다시 끌려왔다"고 선감도 거주 시절을 회고했다.

 

그는 "아이들이 달아나다 잡혀 와서 교관에게 맞는 모습을 몇 번인가 봤다"고 폭력의 현장을 증언했다.

 

이하라씨는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갔으나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이지메)을 당했다.

 

당시 경험이 선감학원 소년들이 처한 상황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이하라씨는 "나 자신이 이지메를 당하는 순간 '선감도의 아이들도 어쩌면 일본에 괴롭힘을 당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면서 "나는 선감도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중학교 1·2학년 무렵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장거리 트럭 운전사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선감도에 관한 글을 계속 썼는데 거의 40년이 걸려서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하라씨는 "운전석에 노트를 놓아두고 신호 대기 중에도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기록하곤 했다"고 더딘 집필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1980년 4월 광복 후 처음으로 선감도를 재방문해 취재를 시작했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이하라씨는 "사진을 찍다가 간첩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면서 "선감도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중에 경찰관이 심문하고 소지품 검사까지 했고 다른 장소로 가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 선감도'가 "경험에 토대를 둔 사실에 가까운 소설"이라고 규정했다.

 

다만, 일본인에게 맞던 소년이 '나는 일본 사람이 아니라 조선 사람'이라며 혀를 깨물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목격하거나 들은 것이 아니라 허구라고 덧붙였다.

 

이하라씨는 이 부분이 작품에서 가장 공을 들인 대목이고 이를 통해 조선인의 민족성이나 기개를 드러내려 했다면서 '아! 선감도'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쓴 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 선감도'가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쓴 책이며 일본인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알려주려고 한 것이지 일본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하라씨의 '아! 선감도'는 선감학원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일으키는 재료가 되기는 했지만 일제 강점기 소년들에 대한 선감학원 내 폭력이 제대로 규명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선감학원에서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성폭력과 과밀수용, 부실급식 등 여러 인권 침해가 있었다면서 김영배(67) 씨 등 선감학원 수용자 167명이 아동 인권 침해 피해자로 인정된다고 지난달 결정했다.

 

그러면서 1945년 이전 일제 강점기에 관해서는 선감학원의 아동 인권 침해 실태를 연구·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이하라씨는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과 일본 측이 이를 이유로 강제노역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는 것에 관한 의견도 인터뷰에서 함께 밝혔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10년 정도 기간에 한국은 가난했고 (청구권 협력에 따라 일본이 제공한) 5억달러(차관 2억달러 포함)를 몹시 가지고 싶었을 것"이라면서 "(협정에 한국이) 국가로서 불만을 제기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지만 피해자 한명 한명이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라씨는 일본 정부가 한국의 판결이나 요구에 대해 법률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면서 "법률은 표면적인 방침일 뿐이며 법률보다 앞서 인간이라는 인도적 입장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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