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의 심우도] ‘이재명 기자회견 자처’의 황당한 심각성

2022.11.16 06:00:00 13면

 

 

언론에 난 최근 글 ‘이재명 긴급 기자회견 자처’의 뜻을 톺아보고자 한다.

 

CBS노컷뉴스 김기용 기자의 기사를 비롯한 몇 개 언론의 보도다. 하나를 인용한다.

 

《최측근 영장 청구에 이재명 긴급 기자회견 자처 / 이재명 "특검은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들 망라해야" / "거부할 경우 민주당이 가진 힘 통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 민주당, '특검 카드'로 당대표 '사법리스크' 국면 전환 시도》

 

‘자처’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아기집 자궁(子宮)을 한방(韓方)에서 이르는 의료용어인 자처(子處)와 함께, 자처(自處)라는 말이 나온다. 한자가 다른, 아기집 子處 얘기는 아닐 터이니 自處가 (흔히) 쓰는 말이겠다.

 

풀이가 세 가지다. 1. 자기를 어떤 사람으로 여겨 그렇게 처신(處身)함, 2. 자기의 일을 스스로 처리함, 3. 의분(義憤)을 참지 못하거나 지조(志操)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음 등이다. 언론은 이 중 어떤 뜻으로 자처라는 단어를 썼을까.

 

국립국어원 국어사전의 이 풀이를 저 기사와 함께 살피니 꽤 고민스럽다. 저 글은 《이재명=긴급 기자회견》이라는 ‘수학적 논리로 세상을 묘사한’ 등식(等式)일까? 이재명이 기자회견을 스스로 처리했다고? 또는, 설마 긴급 기자회견이 자살(自殺)과 관련됐을까?

 

이 얘기가 풍자적이며 비꼬는 묘사임을 여태 알지 못한 사람이라면, 공부부터 좀 해야 한다. 하긴 공부는 모두가 늘 할 바이긴 하다. 하여간 말은 그 의도하는 바가 잘 드러나야 한다. 특히 언론(기자)의 말이나 글은 명확(明確)해야 한다. 공공(公共) 즉 모두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자문(自問)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찬찬히 또렷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재명 긴급 기자회견 자처’는 무슨 뜻이고, 나는 왜 저 단어를 선택했던가?

 

‘나’에게 설명이 안 되면, 나를 이해시키지 못하면, 독자도 이해시킬 수 없다. 언론 책무(責務)의 도구는 ‘말’에서 시작되며 끝나는 지점도 거기다. 이를 무시하고 ‘급해서 오타(誤打)친 것’ 등으로 둘러대고서 자문의 이번 기회를 버린다면, 책임을 버리는 것이지 싶다.

 

스스로 자(自)에 살 처(處), 두 글자 뜻을 따로 나눠 푼 다음 다시 이를 합쳐볼 필요가 있다. 이 방법은 어쩌면 이런 ‘말의 혼란’의 먹구름을 걷어줄 처방전일 수 있다. 말의 속뜻 또는 어원(語源)을 말하는 것이다. ‘말밑’이라고도 한다.

 

‘말에, 소리 말고도 (속)뜻이 있다.’는 말에 의아해 하는 이도 있다. 예를 들어, 표시가 ‘표시한다.’는 뜻을 가지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標示(표시) 한자어의 標와 示가, 표를 써서 보여준다(示)는 말이, ‘표시’의 그 뜻을 보듬어낸다는 것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혹 저 自處는 자청(自請)을 잘못 쓴 걸까? 기본 단어가 엉키면 그 글과 언론사 모두를 믿기 어렵게 된다. 생각의 틀은 말과 글이다. 그 틀을 잘 짓는 것이 지식(언론)의 첫걸음이다.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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