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희종의 '생명'] 사회참사와 정치폭력

2022.11.17 06:00:00 13면

 

 

사회참사로 인한 희생자 이름 공개로 사회가 시끄럽다. 일부 언론매체가 희생자 이름을 공개했고, 정의구현사제단은 공식집회에서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한분 한분 불러 애도의 뜻을 기렸다.

 

 

예로부터 일반 사건사고나 참사와 달리 사회참사에 있어서는 유족의 특별 요청이 있지 않는 한 공개된 합동추모장에서 애도된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이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국민들도 자원봉사 형태로 참사를 겪은 유족들 아픔에 동참한다.

 

 이는 참사의 슬픔을 공유하는 유족들이 함께 고통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는 치유의 과정을 갖게 하고, 충격 속에 함께 슬픔을 공유하며 마음에 상처 입었던 사회구성원들에게도 치유 경험을 준다.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인 경우, 필수적 원인 규명과 함께 참사와의 관련 여부를 떠나 행정상의 총괄책임자가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 역시 사회적 치유 과정의 하나다.

 

이처럼 사회참사는 개인을 넘어 사회적이다. 유족이 겪은 일과 고통은 유족만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의 것이다. 사회 참사를 통해 상처 입은 사회구성원들 역시 유족과 다를 바 없이 집단 치유가 필요하며, 이는 무고한 희생자에 대한 각자의 슬픔과 분노를 구체적으로 충분히 표현하고 나눌 수 있을 때 이뤄진다. 사회참사에서 고인 이름의 공개가 기본이자 공적 기념물 조성까지도 자연스런 이유이다.

 

사적 영역을 존중하는 미국에서도 911 사태의 모든 희생자 명단이 기념 공간에 새겨져 있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유족과 사회구성원들의 상처는 집단기억으로 승화되어 역사의 교훈이 된다. 사회참사에서 공개를 원하지 않는 유족 의사가 존중되어 비공개할 수는 있어도, 그 반대의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번 참사에서 희생자 시신과 유족은 정부에 의해 신속하게 뿔뿔이 흩어졌다. 합동추모식에서 영정과 이름은 지워졌고, 심지어 참사와 희생자를 사고와 사망자로 부르라는 지침마저 공식 하달되었다. 그리고 이제 희생자의 이름만 말해도 유족 허가나 법까지 들이대면서 비난한다. 사회참사가 마치 유족만의 문제인양 몰아가며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치유도 무시하면서 오직 축소하려고만 하는 정치적 접근이다.

 

참사 희생자의 개인 층위에서 보아도 이들이 천인공노할 흉악한 범죄자가 아닌 이상,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평판이나 여러 문제가 있는 이라도 고인이 되면 더 이상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입장을 떠나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무고한 10.29핼러윈 희생자들의 명단 공개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참사 희생자들을 흉악한 범죄자 취급하는 셈이고, 이는 희생자를 사망자로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행정공백에 의한 사회참사에 있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애도관리자들이거나 정치적 계산이나 하는 자들이 법과 규정을 가장해 유족과 사회구성원을 분리하고, 우리가 겪은 집단상처 마저 억압해 이중으로 사회를 병들게 하는 정치 폭력을 행사 중이다. 각각의 무고한 희생자들이 158이란 수치에 가려질 것이 아니라 자신 이름으로 당당하게 호명되어 애도 받고, 함께 슬퍼하는 우리 모두의 상처도 치유되기를 기대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공감능력을 지닌 집단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각 개인의 고유성은 무엇보다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생명 감수성의 기본임도 기억하자.

우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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