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색] 롱맨 사전

2022.11.22 06:00:00 13면

 

 

2005년 8월, 퇴근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사전을 한 권 구입했다. 롱맨 사전(Longman Dictionary). 다음 날 평양에 가서 만날 북한의 보장성원 K 선생에게 선물할 물건이었다. 석 달 전 5월에 북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아들이 평양의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고 자랑하던 일이 생각나 그의 아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순안공항 입국 검색대를 빠져나오자 K 선생을 비롯한 북한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기다리고 있던 차에 일행과 함께 올랐다. K 선생이 내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아드님 대학 잘 다녀요?”나의 물음에,“아, 예, 잘 다닙네다.” 얼굴을 활짝 펴며 대답한다.

 

자식 자랑은 남북이 따로 없는가 보다. 지난번 만났을 때 서로 질세라 열심히 자식 자랑을 늘어놓던 장면이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가 그 애한테 입학 기념으로 줄 선물을 하나 준비했지요.”

 

영영사전이고 아주 역사가 깊은 유명한 사전이라고, 내가 그 사전 덕분에 미국 유학할 기회를 얻었다고 설명을 하니, K 선생은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음 날, 사업 현장을 방문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K 선생이 기사에게 뭐라 귀엣말을 하고는 내 곁에 다가앉았다.

 

“내리자는 말은 하지 말고, 그냥 실컷 차 안에서 평양 구경하시라요.” 평양구경 제대로 하고 싶다는 내 소원을 들어 줄 모양이다.

 

평소에 다니지 않던 길을 이리저리 굽이굽이 돌아 평양 시내를 한 바퀴 도는 것 같았다. 눈을 차창에 고정한 채 지나가는 사람, 상점, 아파트, 놀고 있는 아이들, 한적한 길 등을 정신없이 구경했다.

 

그런데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중에 퇴직한 뒤에 이곳에 와서 살게 되는 건 아냐?’

 

평양을 떠나기 전날 밤, K 선생과 마지막 이별주를 나눈 뒤 내 방으로 돌아와 짐을 꾸렸다. 수차례 평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다는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K 선생의 아들에게 줄 선물인 사전을 테이블 위 내 가방 옆에 놓으면서 내일 아침에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문을 여니, K 선생이었다. 이 양반이 혈중 알코올 농도가 부족해서 왔는가 생각하며 옷을 챙기려는데, K 선생은 테이블 위의 사전을 만지작거리며 그냥 주무시라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K 선생은 내가 사전 주는 것을 잊고 내일 떠날까 봐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미안하다고, 경황이 없어서 미처 못 주었다고, 아드님께 열심히 공부하라고 전해 달라고 하면서 사전을 건넸다. 사전을 받아들고 문밖으로 나가면서 K 선생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맙수다.”

 

연일 지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답답한 남북관계.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다시 만나야 한다는 우리 민족의 숙명적 명제를 생각해 본다. (필자의 졸저(拙著) 『그래도 우린 다시 만나야 한다’』중에서 발췌)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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