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수놓은 신작들…별 보기 좋은 ‘달 없는 밤’

2022.11.28 20:00:00 16면

2022 경기작가집중조명 전시 ‘달 없는 밤’
기슬기·김시하·천대광 등 중진 작가 3인 신작 선봬
사진, 건축,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예술 세계 살펴
내년 2월 12일까지, 경기도미술관

 

태양과 달, 지구가 일직선상에 놓여 지구에서는 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삭’. 달빛이 사라져 어두운 밤하늘이지만, 이 때문에 더 많은 별들을 관찰할 수 있다.

 

기슬기, 김시하, 천대광 등 작가 3인의 신성(新星)과 같은 신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지난 24일 경기도미술관에서 개막한 경기작가집중조명 ‘달 없는 밤’은 각자의 매체를 깊이 있게 탐구해온 작가들의 작업 세계를 ‘지금’의 시점에서 멈춰 들여다본다.

 

 

전시는 저마다의 신화를 품은 별자리처럼 자신만의 소우주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들이 앞으로 그려갈 별자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선영 학예사는 “세 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일이 별자리를 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작가들이 작품이라고 하는 별을 내놓으면,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별자리를 그려 보며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보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전시가 한 달 중 별이 가장 잘 보이는 ‘달 없는 밤’ 같은 전시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단순한 평면을 넘어선 사진에 대한 고찰

 

기슬기는 사진을 찍는 주체와 피사체, 보는 주체와 그 대상의 간극을 다뤄왔다. 인화된 사진을 재촬영하거나 콜라주하는 등 다양한 연출로 사진을 확장한다. 이를 통해 누구나 쉽게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오늘날의 이미지 생산과 소비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일루전(illusion), 공간을 키워드로 빛과 빛이 충돌해 반영된 레이어의 중첩, 그래픽의 오류를 제도화하는 오류 메커니즘 연구, 그리고 백색 사진술 실험의 연작을 선보인다.

 

 

특히, ‘그것은 당신의 눈에 반영된다’는 관람객이 작품을 바라보는 실제 모습을 재현했다.

 

기슬기 작가는 실체를 반영하는 사진처럼, 햇빛을 반영해 빛나는 유사성을 가진 달의 위상 변화를 촬영했다. 그 후 전시 공간에 설치된 사진들을 다시 피사체 삼아 촬영했다. 관람객이 작품을 관람하는 동일한 조건에서 사진 작품을 촬영한 것이다.

 

액자 유리를 통해 반사되는 관람객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 그 뒤로 보이는 실제 전시 공간이 보인다. 그와 동시에 작가의 시점으로 촬영된 공간이 겹쳐진다.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이미지의 실제적 경험을 질문하고 관객참여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재생산되는 이미지를 실험한다.

 

 

◇ 개인의 역사가 깃든 공간 ‘집’

 

천대광 작가는 관객에게 새로운 공간적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보여 준다. 장소의 물리적,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기억의 공간들을 짓고 연결하며, 전시 공간 자체를 하나의 풍경으로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슬래브(slab)’ 건축 방식을 차용한 공간들을 조각조각 붙여 새로운 조형으로 탄생시킨 작품 ‘사람의 집’을 선보인다.

 

집은 나를 담아내는 공간이자 나를 만들어가는 곳으로,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작가는 기억이라는 개인의 역사와 집이라는 개인의 공간을 나, 너, 우리 공통의 기억과 공간으로 확장한다.

 

김선영 학예사는 “천대광 작가가 유년 시절을 보낸 1970년대는 도시화가 되면서 건축 재개발 등 집을 짓는 것이 활발한 시기였다”며 “작가 개인적인 경험 혹은 기억에서 출발한 구조물(집)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만들어낸 풍경 속에서 관람객은 각자가 가진 자신만의 시공간적 경험으로, 저마다의 감응을 받을 것이다.

 

작품을 보고 관람객들이 어떤 것을 느꼈으면 하냐는 질문에 천대광 작가는 “관객들이 무엇을 얻었다고 하면 작업과 전혀 상관이 없어도 의미가 있다”며 “관객들은 작품을 만나러 오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만나러 오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작품을 통해 다시 바라보고 가는 게 가장 좋은 관람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 쓸모와 무쓸모, 그 경계

 

자연과 인공, 생명과 무생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실과 허구 등 양분화된 것에 관심이 많은 김시하는 쓸모와 무쓸모의 경계선을 살피는 작품 ‘조각의 조각’으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양분된 세계관, 그 사이의 미묘한 다름과 차이, 괴리와 불안과 같은 심리적 부분까지 포함한 감각을 다루며 조각과 설치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극 무대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입구와 출구,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원형의 무대는 작가에서 선택받지 못한 ‘조각의 조각’으로 채워진다.

 

작가에게 선택돼 작품으로 탄생한 ‘조각(sculpture)’을 ‘쓸모’라 한다면, 이를 만들며 버려지는 ‘조각(piece)’은 ‘무쓸모’가 된다.

 

쓸모없이 버려지던 조각은 관람객을 마주하고 조명을 받으며 무대 위 쓸모 있는 작품으로 거듭난다.

 

또한, ‘조각의 조각’은 작품과 관람객을 구분 짓지 않는다. 관람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감상객에 그칠 수도, 작품 속으로 들어가 무대를 함께하는 주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쓸모와 무쓸모의 경계를 자신만의 고민으로 만들어간다.

 

김시하 작가는 “양분된 것에 관심이 많은데, 이번에는 ‘쓸모’와 ‘무쓸모’에 주목했다. 무엇과 무엇의 사이를 유영하며, 작품으로 그 경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이어 “크기도 자유롭게 하는 등 연극적인 무대 구성과 조각을 어떻게 연결 지을까 조금 더 고민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전시는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 시각예술 분야 창작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중진 작가 3인을 선정해 신작 발표 기회를 제공하는 경기작가집중조명전으로 내년 2월 12일까지 진행된다. 관람료 무료.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정경아 기자 ccbbk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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