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제발 ‘정치’ 좀 합시다

2022.12.07 06:00:00 13면

 

 

조선시대 사색당파를 적폐로만 보는 시각은 ‘식민사관’의 악영향이라는 주장이 있어요. 선조에서 영조까지 180년간의 당파 간 논의를 정리한 이건창의 ‘당의통략(黨議通略)’엔 순수하게 당쟁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은 79명뿐이라고 적고도 있죠. 그러나 걸핏하면 상대 당파 유력자의 죄목을 들어 “목을 끊어야 한다”고 악악대는 조선왕조실록 기록은 참으로 짜증 나는 장면들이죠.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안을 놓고 잡음이 커지고 있네요. 현재 9명(MBC)·11명(KBS)인 공영방송 이사회를 21인 규모의 운영위원회로 개편하고, 100명 정수의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한 대목이 눈에 띄네요. 얼핏 보기에는 그럴듯해요.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임명 제청할 후보를 최종결정하는 운영위원회 구성에 분식(粉飾) 술수를 교묘히 감추어뒀군요. 


지난 정권 5년 동안 꼭 해야 할 ‘방송개혁’은 안 하고 독점구조를 실컷 즐긴 민주당 아닌가요? 그러더니 야당이 되자마자 부랴사랴 흑심 가득한 개정안을 쏙 내밀어 상임위에서 단독 통과시키다니, 이건 그저 또 하나의 속 보이는 내로남불 행각일 뿐이에요.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은 언론 운동의 최대 숙원이죠. 오랜 논란을 통해서 이미 좋은 대안이 많이 나와 있어요. 민주당도 모르지 않을 텐데, 복선 살짝 버무린 수상한 법안 들이밀고선 또 막 밀어붙이는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요. 정말 나라의 미래를 위해 진실로 이 문제를 풀어내려면 현 제도를 그대로 놓고 종다수 찬반 결정 구조를 2/3, 또는 3/4 가결로 바꾸기만 해도 돼요. 후보를 선택할 때부터 이념편향 인사들일랑은 아예 고려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치를 두는 거죠. 적어도 여야가 모두 공감하는 인재들을 놓고 검토하지 않으면 운영위를 통과하지 못하게 막자는 거예요. 


그나 마나 참으로 절망적인 것은 요즘 이 나라에 정치가 아주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에요. 정치인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다 고변(告變) 중독자가 돼버렸어요. 조선시대 사색당파보다 한 수 더 뜨는 참상이지요.


여야 정치인들이 고소·고발에 미쳐서 검경·사법부 밑으로 스스로 기어서 들어가고 있어요. 수사·재판보다 더 멋진 게 정치 영역인데, 그야말로 자존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군요. 오만 궤변 다 동원해서 악담질에만 몰두하는데, 이 쩨쩨한 드잡이 짓들을 무슨 수로 ‘정치’라고 불러요? 국리민복은 망각한 채 오직 상대편 밟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조잡한 풍경이에요. 퇴보하는 정치에 낙망하는 민심이 정말 안 보이나요? 


어쨌든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이 이렇게 가면 안 돼요. 여당도 야당도 부디 사심을 버리세요. ‘방송개혁’은 이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첫 관문이에요. 나라의 미래를 밝힐 일들, 천박한 힘자랑 말고 제발 ‘정치’로 좀 풀어주세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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