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2022.12.09 06:00:00 13면

 

 

빼돌린 정보로 부정부패를 일삼는 무리들은 탈세에도 능하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고액·상습체납자는 56,085명으로 총 체납액수는 51조1천억 원에 달한다. 2019년을 기준한 자료인 만큼, 상습체납자의 실제 규모와 체납액은 훨씬 많을 것이다. 지난 3월, 국세청은 암호화폐에 재산을 은닉한 상습 고액체납자 2,416명을 적발하고 체납세금 366억 원을 징수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고의로 세금을 체납한 사람들에 대해 국세청이 강제 징수한 것일 뿐, 들키지 않고 자행되는 불법탈세는 우리사회 곳곳에서 여전하다.

 

페이퍼컴퍼니, 해외재산은닉, 역외탈세, 편법증여, 차명계좌, 다운계약서 등 수법 또한 다양한데, 최근에는 죽은 사람과 거래한 것처럼 속여 돈을 빼돌리는 신종수법까지 등장하였다. 대다수 국민들의 세금은 근로소득을 통해 원천징수한다. 그런 만큼 국민들에게 탈세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끼리끼리 뭉쳐 부정부패를 일삼고 탈세를 조장하는 무리들은 국민을 깔보고 무시한다. 입으로는 섬긴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짐승’(개·돼지)이라고 비웃는다. 팍팍한 살림살이에도 끽소리 못하고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그들의 눈에는 ‘호구’로 보일지 모른다.

 

묻고 싶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이 개·돼지라면, 국민의 등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빨아먹는 그들은 과연 무엇인가.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기생충인가. 그렇다면 하나 더 물어야겠다. 숙주가 말라죽으면 숙주의 몸에 들러붙어 기생하는 기생충 또한 죽는다는 걸 모르는가. 몰라서, 국민들의 고통과 신음 앞에서 “배 째”라며 딴청을 부리는가. 지금은 그렇게 딴청부리고 거드름피울 때가 아니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무너지면 이 나라 경제도 함께 무너진다. 하지만, 무너지고 흔들려야 그들에게는 불로소득으로 벌어들이기 쉬운 ‘좋은 세상’이다. 이웃이야 죽든 말든 그들은 돈만 벌면 그만인 세상을 원한다.

 

현대판 장발장에 관한 소식이 자주 뉴스에 등장한다. 코로나 국면과 겹치면서 생활고에 쫓긴 이웃들이 범죄의 덫으로 내몰린 결과다. 생계형 범죄 소식에 국민들의 마음은 무겁다. 현대판 장발장이 되어 구속되는 이웃들의 사연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떠올리게 한다. 수원에서는 달걀 18개를 훔친 40대 실직자가 구속되었고, 전주에서는 캔 음료 2개를 훔친 취업준비생이, 군산에서는 콩나물과 부추를 훔친 시각장애인이, 울산에서는 빈 소주병을 훔친 청년이, 대구에서는 생선 1마리를 훔친 50대 가장이 생계형 범죄로 구속되었다.

 

장발장(Jean Valjean)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불쌍한 사람들)』의 주인공이다. 소설은 200년 전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뮤지컬과 영화로까지 제작되며 꾸준하게 사랑받는 까닭은, 시대를 초월하여 끝없이 추구해야 할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레미제라블이 휴머니즘 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것도 그래서다. 작품 속 배경 또한 우리사회의 현실과 닮았다. 비인간적인 법과 제도, 극심한 빈부격차, 사회변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소설 속 배경이기에 앞서 우리의 현실이다.

 

- 지상에 무지와 가난이 존재하는 한, 이 책이 무익하지는 않으리라.

라고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의 서문에 적었다. 책이 나온 지 160년이 지났지만, 제목에 담긴 ‘불쌍한 사람들’의 설움과 아픔은 여전하다. 여전하지 않는 것이라면, 빅토르 위고가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이다. 엄연한 사회적 신분격차에도 불구하고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가 우리사회에는 없다. 윤리적 덕목과 부의 사회적 환원을 실천하는 1%는 더더욱 희귀하다. 그래서 빅토르 위고가 더욱 큰 사람으로 느껴지는지 모른다. 위고는 “8천 프랑은 딸에게, 5만 프랑은 극빈층에게 나눠주라”고 적힌 유언장을 남기고 죽었다.

 

 

고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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