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배의 공동선(共同善)] 일제와 분단이 남긴 보안법 개폐를

2022.12.14 06:00:00 13면

 

 

국가보안법은 일제가 독립 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악명 높은 치안유지법의 후속판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생존이 불투명해진 친일파들이 자신의 반민족 행위를 감추고 항일 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이름만 바꿔 지금까지 유지한 법인 것이다. 문제는 법 조항이 시대에 전혀 맞지 않은 애매한 규정 투성이인 데다, 정치적으로 악용돼 헌법적 기본권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본질부터 침해하고 있다는 심각성에 있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까지 이 법의 개폐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온 까닭이다.

 

2004년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법의 폐지를 권고했고 유엔 인권이사회에 참석한 미국 대표는 최소한 개정할 것을 한국 정부에 촉구했다. 2015년에는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보안법 7조 찬양 및 고무 혐의와 관련한 잇단 기소사태에 우려를 표하면서 해당 조항의 폐지를 요구한 적도 있다. 국제사면위원회, 심지어 미국 국무부도 기회 있을 때마다 그 폐지 의견을 제시했다.

 

법의 폐해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나타났다. 자유당 정권에 도전했던 조봉암 선생과, 5·16쿠데타 이후 민족일보사의 조용수 사장이 이 악법의 희생자가 되었으며 유신독재 때는 간첩 조작의 흉기로 줄곧 이용되었다. 예컨대 1975년 민청학련 사전의 배후 조종자로 조작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이 극형을 당한 것은 악법의 광폭성을 웅변한다. 이들이 처형된 그해 4월 8일은 세계 사법사상 ‘사법살인의 날’로 기록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은 2000년대 들어서야 모두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물며 전두환 독재 치하의 폐해에 대해서는 더 말을 보탤 필요도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국가보안법의 칼춤이 재연되고 있는 조짐이다. 주체사상 연구자로 저서 ‘주체사상 100문 100답’을 펴낸 ‘통일시대연구원’ 정대일 박사가 지난 주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전격 체포된 것이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이 사실상 ‘국가종교’의 구실을 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에서 이 사상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 없이 북한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선교 목적의 학술적 연구에 보안법의 칼을 들이댄다는 것은 학문과 종교에 대한 탄압으로 간주될 수 있다. 압수된 서적이 김일성 주석의 항일 투쟁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책 내용은 과장 여부를 떠나서 주체사상의 이념적 뿌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학계의 공통된 평가다. 정 박사 체포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의 개폐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북한 연구에 이 회고록을 분석 활용하는 것은 마치 무슬림들을 이해하기 위해 코란을 분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선교와 연구를 목적으로 한 학술 활동을 처벌하겠다는 것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니 국가보안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오지 않았는가? 국가보안법은 즉각 개폐되어야 하는 것이다.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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