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고독사(孤獨死)와 고려장(高麗葬)

2022.12.21 06:00:00 13면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하시나요./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가수 장사익이 불러서 심금을 울린 「꽃구경」이라는 노래예요. 버려지는 순간까지 자식 걱정만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눈물을 삼키기 힘든 이 노래 가사는 김형영 시인의 「따뜻한 봄날」이라는 제목의 시랍니다. 고려장(高麗葬) 설화가 소재이지요.


고려장은 고려 시대에 나이 든 부모를 다른 곳에 버려두고 오던 풍습이 있었다는 설화이자 도시 전설이에요. 그런데 연구자들이, 워낙 굶주렸던 시대에 벌어진 단발적인 사건일지는 몰라도 ‘고려장 풍습’ 얘기는 정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네요. 더욱이 유사한 설화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각양각색 전해온다는군요. 먹고살기 힘들다고 부모를 지게로 져서 산에다가 버리는 패륜이 최소한 우리 조상들 시대의 풍습은 아니었다는 거죠.


지난 2021년 전국에서 고독사(孤獨死)한 인원은 모두 3378명으로서 전년보다 3.0% 늘었다네요. 고독사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살다가 자살·병사 등으로 외로이 임종을 맞고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시신이 발견되는 죽음을 말해요. 그렇게 죽어가는 이웃이 전체 사망자의 1%쯤 된다니까 결코 사소한 사회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지난 5년간 고독사 통계에서 50~60대 남성이 45~52%로서 단연 비율이 높았다는 대목이 눈에 띄네요.


서울대행복연구센터 등의 분석에 의하면 남성 50~60대 중장년층은 건강 관리나 가사 노동에 익숙지 않고, 실직·이혼 등이 겹치면 삶의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연령대여서 고독사에 취약하다는군요. 결국, 1인 가구의 폭증과 함께 날로 늘어나는 고독사 문제 역시 사회복지 문제네요. 정부가 이번 실태 조사 결과를 토대로 고독사 예방·관리를 위한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로군요. 


고독사는 사회적 고립이 불러오는 파생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에요. 가족 유대가 약화한 사회적인 분위기와 결부되는 까닭에 지역사회에서 조기발견을 위한 연결 고리를 다양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해요. 독거노인이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일상의 변화를 점검하여 위험신호를 포착하는 시스템을 더욱 많이 개발해야 한다는 조언이에요. 


인간이란 원래 외로운 존재이긴 하지만 잠시 잘못 생각하거나 심신이 병들어 꼼짝 못 하고 죽어가는 일 모두 안타깝긴 마찬가지잖아요. 더 늦기 전에 그런 비극을 막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고려장이 역사 속에서 실재한 풍습이 아니라, 특수한 사건의 과장이라는 건 다행한 일이지요. 그런데, 작금 큰 폭으로 늘어나는 고독사를 우리가 방관한다면 언젠가 사가(史家)들이 ‘대한민국에 고독사를 외면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기록하지 않을까요? 그래선 안 되잖아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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