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보약] 70년대생이 70년대생에게

2022.12.28 06:00:00 13면

 

나는 드라마(응답하라1994)에서 소환되었던 94학번이다. 첫 번째 실시된 수능을 보았던 세대. 그해는 X-세대마케팅의 시작인 태평양의 트윈엑스의 광고가 시작되던 해였다. 대학생활이 자유로왔는지 그때 누리는 게 특별한지 그 당시는 몰랐다. 마치 충분한 산소가 있는 공기의 가치는 없어졌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듯이. 대학생활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처음시작한 병원생활이 그랬다. 

 

인턴시절은 놀라웠다. 레지던트가 오더를 내리면 인턴은 기계처럼 수행해야 했다. 8명이었던 인턴 중 한 명이 실수하면 단체로 기합을 받았다. 한 번은 담당레지던트한테 엄청나게 혼났었는데.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하라면 하지 무슨 질문으로 토를 다느냐는 논조였다. 바로 윗년차 레지던트 중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병원이 군대보다 더 빡세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렇게 경험했던 문화가 한국조직사회 전반에 스며들어있다는 걸 후에 알게 되었다. 

 

남녀의 차이는 없었다. 병동에 주치의로서 근무를 할 때는 오히려 환자들이 나를 더 따랐다. 오히려 더 꼼꼼하게 진료를 잘 봐준다고 다른 주치의를 거부해 나를 커버해준 남자선배가 무안해진 일도 있었다. 대학교 때는 여학생회가 불필요하니 폐지하자는데 논의가 모아지기도 했다. 논의 끝에 여학생회가 소모임으로 대체되었던 그로부터 불과 10년이 지나지 않아 결혼생활에서 가부장의 실체를 톡톡히 경험하게 되었고 20년 후에 세상에 발표된 82년생 김지영과 미투운동의 그들은 또 다른 나였다.

 

최근의 유전자연구는 인간은 빈서판 위에 새겨진 존재가 아니라 기질적 특성을 타고나는 것과 동시에 후생유전학연구는 유전적 특성조차 환경에 의해 가변적임을 말한다. 우리의 많은 특성들이 사회 속에서의 경험에 따라 구성되어진다. 건강 역시 그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회가 바라는 틀 안에서 순응하려고 노력했던 시간은 극심한 우울을 수반했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 많은 공부와 훈련 그리고 나 홀로가 아닌 너와 나가 필요했다. 한의원에서 종종 만나는 이들도 디테일은 다르지만 큰 골격은 비슷한 경우를 본다. 

 

그녀는 신체화장애로 치료받고 있다. 불면, 불안으로 여러 병원의 치료에도 낫지 않아 내원했는데 호전 중이던 어느 날 다시 잠을 잘 못 자 살펴보니 대학생이 된 딸이 학기 초부터 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또 꺼내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대화를 나누었지만 딸은 엄마가 자신의 말을 잘 안 들어준다고 서운해하며 방문을 닫고 안 나온다고 하였다. 그녀는 “판단분별하지 않는 공감적 대화”를 못했다며 자책했다. 그녀에게 “부모님과 공감적 대화를 해보시거나 배우고 훈련받은 적이 있어요? 하니 없다고 한다. ”받아본 적이 없고 배운 적도 훈련해본 적도 없는 것을 책에서 혹은 누군가의 말을 몇 마디 들었다고 안 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마치 글로 배우는 연애 같다고 할까요? 

 

며칠 후면 70년 대생들 역시 한해 더 나이를 먹는다. 다음 세대에게 우리는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좋은 것을 주려면 무엇을 배우고 훈련해야 할까.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배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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