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선한 능력으로

2023.01.09 06:00:00 13면

 

한 독일인이 있었다. 21세 약관의 나이에 베를린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명한 신학자 칼바르트는 그가 쓴 박사학위논문을 “신학적 기적”이라 평할만치 세상은 천재의 출현을 반겼다. 24살에 베를린대학 신학부 교수가 되고 25살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촉망받는 신학자이자 목사로서의 삶은 27살 나치가 집권하면서 뒤틀리기 시작했다. 당시 독일의 많은 교회들이 히틀러를 그리스도에 비유하며 우상숭배에 휩쓸리자 그는 히틀러에 반대하고 기독교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고백교회운동의 지도자로 나서게 된다. 그가 나치에 저항하는 활동에 투신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게슈타포의 감시를 받던 그는 망명권유조차 거부한 채 활동을 이어가다 1943년 4월 결국 체포되어 히틀러암살모의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독일패망 한 달 전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의 이름은 ‘디트리히 본회퍼’이다.

 

시무식에서 찬송가를 불러 종교편향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진욱공수처장에 대해 불교계에서는 연일 공수처장 사퇴를 압박하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공수처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다. 공수처장이 부른 찬송가는 본회퍼가 감옥에서 죽음을 앞둔 1945년 약혼녀에게 보낸 ‘선한 능력으로’라는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나는 뉴스를 접하고 공수처장쯤 되는 사람이 종교적 열정에 도취되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였을 리는 없을 터, 어떤 메시지를 던진 건 아닌지 궁금했다. 공수처장은 노래를 부르다 울컥해 꺽꺽 소리를 내며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이 시의 의미를 모를 리 없다. 광폭한 히틀러의 파시즘에 맞서 “미친 운전수가 사람들 사이로 질주한다면 나는 희생자들의 장례나 치러주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만이 목사의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로부터 운전대를 빼앗아야 한다”했던 본회퍼와 공수처장은 어떤 감정이입이 있었을까? 

 

본회퍼의 독일이 히틀러의 파시즘이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검찰 파시즘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대통령의 장모가 부당하게 23억 원의 요양급여를 수급한 사건은 무죄가 되고, 영부인이 주가조작에 가담해 이익을 취한 사건은 검찰이 조사할 의지도 전혀 없다. 외려 대통령은 처가에 대한 수사를 “뭐라도 잡아내기 위한 수사”로 규정하며 방패막이를 자처한다. 반면에 이재명민주당대표를 향한 검찰의 칼끝은 200회가 넘는 압수수색에서 보이듯이 인디언기우제 식으로 지구 반대편까지 파헤치고 있다. 취재 때문에 법무부장관 집 초인종을 눌렀던 ‘더 탐사’에게는 압수수색과 영장청구가 이어지지만 대통령은 자신이 수사해 잡아넣었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범죄자들은 대거 사면복권시켜 버렸다. 히틀러가 정권의 기반을 다질 때 가장 먼저 독일 노동조합과 좌익을 집중공격했다. 윤석열대통령도 지지율이 폭락하자 가장 손쉬운 노동자, 북한과 싸우며 지지층을 결집시킨다. 그 결과 화물연대는 생존권적 요구조차 묵살당한 채 운전대에 올라야 했고 애꿎은 천연기념물 검독수리는 북한 드론 방어에 동원될 처지에 내몰렸다.

 

본회퍼의 독일과 작금의 대한민국은 여러 면에서 닮음꼴이다. 이런 현실 속에 진작부터 검찰의 전횡에 아무런 수사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정권의 들러리 역할만 한 공수처는 설자리가 없다. “내가 이러려고 공수처장이 되었나?”하는 자괴감에 사무칠 수밖에... 나는 그의 이런 인간적 고뇌가 ‘선한 능력으로’ 빙의했다고 믿고 싶다. 그 믿음은 꿈을 꾼다. 지금이라도 공수처가 검찰과 권력기관을 감시하는 본연의 임무로 되돌아오기를.. 영부인의 주가조작을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기를.. 이 꿈이 내 착각이라면 그는 마땅히 열두 번은 더 물러나야 할 일이다.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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