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별난 도서관 이야기를 들었다.
책이 아니라 사람을 대출해 주는 도서관이라는데 이름하여 ’살아 있는 도서관(Living Library).
도서관을 찾은 사람들은 ‘만남을 원하는 이’를 전용 카드로 신청한다. 대개 직업과 성향등을 기록한다. 사서는 고객이 원하는 이를 백방으로 찾아내 도서관에 오게 한다. 대면 시간은 딱 한 시간. 일반 도서관의 ‘기한 내 책 반납’과 같은 규정이 있는데 ‘만난 사람과 싸워서는 안 되며 한쪽이 대화를 원치 않을 시 바로 중단해야 한다’는 것.
최다 대출 희망 대상자는 ‘은행강도’였다. 당연지사, 대출을 원하는 이는 일반인이 평소 만나기 힘든 존재들이었다. 레즈비언, 랍비, 유럽연합관리 등이 눈에 띈다.
‘집시’를 만나기 원하는 ‘네오 나치주의자’도 이색적이다. 헝가리에서 집시는 보기 드문 존재가 아닌데? 그가 집시를 만나고 남긴 기록이 마음에 남는다.
‘과거 세상의 모든 집시를 증오했는데 도서관에서 만나 대화해 보고 달라졌다. 지금도 도둑질하는 놈들은 싫지만!’
헝가리 하면 제일 먼저 집시가 떠오른다. 야생의 냄새가 맡아지는, 인간의 바닥 정서가 밴, 심장을 저미는 애조가 끓는 집시 음악을 미치도록 좋아한다.
헝가리를 집시의 고향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오랜 세월 학자들의 연구로 그들의 출발은 인도 북부 지방이라는 것, 수천 년 동안 천천히 서쪽으로 이동해 지중해 남단으로, 이베리아 반도로, 러시아 쪽으로 흘러갔다. ‘집시’라는 단어는 생김새만으로 ‘이집트인’이라고 속단한 영국인들이 줄이고 변경해 부른 것이 펴져 오늘에 이르렀다. 집시문화와 먼 우리는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에 나오는 ‘카르멘’, ‘노트르담 파리’에 나오는 에스메랄다 등을 통해 이국의 매혹적인 존재를 떠올리지만 집시가 살고 있는 유럽 등지에서는 전혀 아니다. 15세기 작품,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에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라서 집시 얼굴도 헬렌처럼 아름답게 여긴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처럼 그들은 가난하고 저급한 부류로 대해졌다.
천년 떠돌이 삶의 곤궁은 오늘도 마찬가지여서 거리에서 춤, 노래, 마술 등의 재주로 생계를 잇는 이들이 많다.(버스킹 공연도 집시 문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집시와 음악, 두 단어가 붙어 다니는 이유다. 그들이 즐기는 악기 중 바이올린이 대표적인 것은 떠돌이 삶을 용이하게 하는 작고 단순한 구조 때문이다.
헝가리에 내가 좋아하는 집시 바이올리니스트가 많다. 요제프 렌드바이(Jozsef Lendvay), 안탈 잘라이(Antal Salai), 로비 라카토시(Roby Lakatos) emd......
그들의 음악은 비 내리는 이 음울한 겨울에 잘 어울린다.
안개까지 자욱한 오늘, 집시 소울에 클래식, 재즈가 섞여있는 로비 라카토시의 ‘Spring of dream’을 소개하고 싶다.
불편한 질문 하나.
집시들이 천 년 동안 떠돌이의 삶을 살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첨단, 모던의 사각지대에서 거칠게 살고 있지 않다면 그 소울(soul)이 유지되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