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이 구역 미친 놈은 나야!”

2023.01.30 06:00:00 13면

 

흔히들 우리나라 국민들을 두고 국난극복이 취미인 사람들이라고 한다. 조상들부터 그랬다. 왕조시대 국왕이 의주까지 내뺐어도 백성들은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다. 일본에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쳤어도 만주에서 총들고 싸운건 국민들이었다. 독재정권에 목숨걸고 저항해 민주화를 이룬 풀뿌리 민중들이었으며, 나라가 부도났을 때 금가락지 빼서 보탠 건 권력하나 쥐어보지 못한 장삼이사 국민들이었다. 이런 국민들에게 27일 윤석열대통령은 점잖게 한마디 하셨다. “국민이 어려울 때 나라가 돕고, 나라가 어려우면 국민이 헌신하는 국가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한마디만 하자. “대한민국은 나라만 잘하면 된다. 국민 탓하지 마라!”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제 대통령이 내뱉는 말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워낙 실언이 잦은 터라 본인 스스로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의미를 알고 하는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위의 발언도 대통령이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겠다던 청와대 영빈관에서 행안부, 통일부 등의 업무보고를 받는 와중에 한 말이다.(하긴 요즘 부쩍 청와대 사용이 잦다. 그럴꺼면 뭣하러 수천억 들여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뻘짓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려 충성경쟁을 마다않는 분위기에서 ‘국민이 헌신하는 시스템’이란 워딩이 또 어떤 나비의 날개짓을 불러일으킬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입에 올리면 60명에 달하는 검사들이 야당대표 수사에 올인한다. 200회가 넘는 압수수색에도 뚜렷한 물증조차 없이 소환조사를 거듭하며 모욕주기를 이어간다. 대통령의 말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고 MBC를 대통령 전용기에 타지 못하게 몽니를 부리질 않나, 검찰이 MBC를 가짜뉴스로 수사한다더니 이제는 감사원까지 조사에 나선단다. 그뿐이랴? 이태원참사 희생자명단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12월7일 ‘더탐사’ 강제 압수수색, 1월26일에는 시민언론‘민들레’에 또 압수수색팀이 들이닥쳤다. 1월18일 국정원은 때아닌 간첩단 운운하며 민주노총 압수수색을 벌이더니 28일에는 경남 시민단체 활동가 4명을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체포했다. 무서운 검찰공화국이요 검사독재정권이라 불릴만도 하다. 독재에는 늘 호가호위가 뒤따르기 마련, 세간에서는 법무부장관이 부통령의 권한을 누리고, 진짜 대통령은 김건희여사라고도 한다. 각 부문마다 충성경쟁을 넘어서 이제는 “이 구역 미친 놈은 나야”하는 것을 시전하는 것 같다. 이게 나라냐?

 

서민들은 난방비폭탄, 치솟는 물가에 신음하며 ‘눈 떠보니 후진국’이란 자괴감에 몸부림치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민더러 국가에 헌신하라니.. 여당 유력 당대표후보자마저 하루아침에 내려놓게 만들 정도로 당신은 대선기간 손바닥에 새기고 나왔듯이 주변으로부터 이미 충분히 ‘왕’대접을 받고 있지 않은가? 무슨 헌신이 더 필요한가? 속내는 “공공요금 더 올리고 복지 후퇴 시킬테니 그래도 참아라”는 말을 하고싶은거 아닌가? 

 

선거에서 38%의 지지로 권좌에 오른 히틀러가 총통이 되어 독일민주주의를 땅에 묻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9개월 남짓한 가시밭길을 지나며 대한민국은 “전두환이 양반이었고 박근혜가 차분한 능력자로 보인다”는 절망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말로가 어땠는지를 알기에 나는 오늘도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는 피켓을 목에 걸고 일인시위에 나선다.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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