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출시된 ‘ChatGPT’라는 앱이 있다. Open AI라는 회사가 만든 인공지능 채팅 프로그램인데 나오자마자 전 세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 앱이야 기존에 한국에서 알려진 ‘심심이’나 ‘이루다’ 외에 수많은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ChatGPT는 다르다. 간단한 일상대화 이외에 학문적 영역에서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고 에세이부터 논문 초록까지 이용하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영어를 사용할 줄 안다면 글 쓸 때 참고할 수 있는 초안을 키워드에 맞게 무한대로 생성할 수 있고, 질문자가 AI에게 특정 내용을 학습시킬 수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의 모든 주제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I가 여러 분야에서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은 건 이미 오래전이다.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패배하던 날 충격과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AI 기자가 쓴 기사는 중립성, 신뢰성, 가독성, 심층성 등 모든 면에서 인간 기자를 앞섰고, 사람이 그리면 몇 시간은 걸릴 그림이 클릭 후 몇 초면 완성되며, AI가 만든 인간의 모습과 닮은 인물이 인플루언서가 되어서 TV 광고에 출연하고 있다. 법조계, 의학계처럼 보수적인 집단에서도 어떻게 AI를 활용할지가 화두이니 이미 AI는 인간 생활 곳곳에 들어와 있다. 지구에서 인간만이 향유한다던 고차원적인 사고나 창작영역들은 더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AI 관련 교육이 뜨겁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코딩 교육을 진행하는 학교가 많고, 교사들도 수업에 게이미피케이션을 활용한 각종 프로그램을 도입해 학습자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노력한다.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사용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들의 수가 다양하고 AI 교육에 열의 있는 교사들도 적지 않은 편이다. 멀리서 보기에 한국의 미래 대비 교육은 꽤 잘 진행되고 있는 듯하지만 근본적인 뭔가가 비어있는 느낌이다.
지금까지의 학교 교육은 한가지의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목표였다. 정답을 찾아내는 훈련을 12년 동안 해서 수능 시험 날 고득점을 하는 게 궁극의 지향점이었다. 학교에서 활용하는 프로그램들도 결국 종이에 활자로 적혀있는 문제를 태블릿 속으로 옮겨 게임처럼 재밌게 푸는 방식이거나, 찾아낸 정답을 특정 프로그램에 적어서 교사가 활용하기 편하게 만든 방식이다. 기저에 깔린 ‘빠르고 정확하게 정답 찾기’라는 목표가 변하지 않으니 각종 프로그램이 정답 찾기에 도구처럼 사용된다.
AI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미래 세상에 걸맞은 목표는 무엇일까. 교육이 이전부터 이야기 해왔던 ‘질문을 푸는 사람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인간상에 단어 하나가 추가된 것으로 귀결된다. 바로 ‘AI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이미 AI가 인간을 앞서 있고 모든 정보를 갖추고 있으니 그것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서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는 방법을 교육해야 한다. 호모 콰렌스, 질문하는 사람이 호모 사피엔스, 슬기로운 사람을 압도할 시대가 오고 있다.
대학원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 눈길을 끈 글이 있다.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ChatGPT를 논문에 참고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었는데 한 대학원생의 지도교수가 ChatGPT를 활용해서 논문 초록을 작성하는 것에 긍정적인 조언을 던졌다고 했다. 한국의 국제학교에서 ChatGPT를 사용해서 과제를 낸 학생들의 점수를 0점 처리한 것과는 대조되는 일화다. 신문물을 무조건 사용하지 못하기 막기보다는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서 교육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변화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