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공천(公薦)’과 ‘선비정신’

2023.03.08 06:00:00 13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조선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긴 세월 폄하돼온 ‘선비정신’에 대한 재평가 이야기가 요즘 등장하고 있군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것까지는 좋은데, 사회를 개혁해내기는커녕 교조적 맹종으로 반상(班常)의 부조리를 심화시킨 게 문제였죠. 나라를 패망시킨 죄로 ‘선비’는 현대인들에게 그리 좋은 이미지를 갖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물론 일제강점기 일본의 교활한 모함도 한몫하긴 했죠. 


국리민복(國利民福) 추구는커녕 오직 권력 연장에만 눈이 어두운 작금 정치꾼들의 소인배 행각을 지켜보다가 문득 ‘선비정신’ 덕목이 떠올랐어요. 학식과 예절로 지키는 지행합일(知行合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와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정신력, 공적인 일을 앞세우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라는 ‘박기후인(薄己厚人)’ 등이 선비정신의 요체이지요.


강한 것은 억제하고 약한 것은 부양한다는 ‘억강부약(抑强扶弱)’,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남보다 나중에 즐거워하라는 ‘선우후락(先憂後樂)’, 권력을 가져도 재화를 탐내지 않는 ‘청빈검약(淸貧儉約)’ 등도 있어요. 이런 교훈에 우리 정치권 인사들을 견줘보면, 안타깝게도 단 한 사람도 흔쾌히 떠오르는 이가 없어요. 최근 여야 정치권 행태란 정확하게 그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게 정직한 평가일 거예요. 


은행 대출금리와 물가가 무시무시하게 치솟고 있네요.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 수출마저 죽을 쑤고 있어요. 경기가 좋아질 가능성은 제로인데, 국가안보 환경마저도 온통 암울한 전망뿐이에요. 정상적이라면 여야 정치권은 우리 국민을 어떻게 살아남도록 할 것인가를 놓고 머리를 맞대고 밤을 새워야 하는 시점이지요. 그런데 여당 국민의힘 전당대회 돌아가는 모습에는 그런 고뇌의 흔적이라곤 단 한 자락도 보이지 않아요.


국회 절대다수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흘러가는 모습 또한 조금도 다르지 않네요. ‘민생’ 어쩌고 하는 것은 그저 구색갖추기 사탕발림 립서비스에 불과하고 온통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이재명 대표 문제를 중심으로 정략 계산에만 함몰돼 있군요. 재미있는 건 여야 모두 온통 내년 총선에 즈음한 ‘공천’에 변수(變數)를 걸어놓고 있다는 점이에요. 공천만 보장된다면 협잡이든 말든 쉽게 영혼을 팔아버릴 것 같은 게 요즘 정치 풍토 아닌가 싶어요. 


먼 훗날 사가(史家)들은 오늘날의 이 천박한 정치를 어떻게 기록하고 평가할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선량(選良)이라는 별칭의 국회의원들이야말로 영락없는 현대판 ‘선비’들 아닌가요? 잠시라도 좋으니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선비정신’을 좇아 흉내라도 좀 내보면 안 될까요?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라는 ‘박기후인(薄己厚人)’ 정신 이거 하나만이라도 보여주세요. 하나같이 거꾸로 행동하고 말하길래 해보는 부탁이랍니다.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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