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본(本) 하나가 일본에서 돌아왔다. 전문가들은 ‘동여도(東輿圖)의 요소를 품은 대동여지도’라고 뜻을 더한다. 설렐 만한 일이다.
여(輿)와 여지(輿地)라는 말이 눈에 띈다. 지도(地圖)는 땅의 여러 사물을 그린 그림이다. 에두르지 않는, 보편적 이름이다. 동양학에는 비유적인 이름이 또 있었다. 輿地다.
輿는, 車를 보듬은, 수레(車·거 또는 차)의 다른 이름이다. 동여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처럼 옛 지도나 지리지(地理志)에 약방의 감초 격(格)이다.
지도는 원래 암각화(岩刻畵)나 갑골문의 (그림)문자처럼 인간이 제 생각을 표시하는 도구적 이미지다. ‘그림’의 하나이며 이런 그림은 나중에 문자(상형문자)로도 진화한다.
輿는 바퀴 달린 마차 그림인 車보다 상징적인 그림이다. 바탕글자인 舁(여)는 ‘마주 (힘 합쳐) 든다’는 뜻이다. 輿地(여지)의 뜻은 그 상징의 바탕에서 짐작하자. ‘세상을 (모두) 실은 수레’라고 푼다. 수레는, 마차처럼 움직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여론(輿論·public opinion)의 輿이기도 하다. 세상(사람들)의 뜻(마음) 실은 마차, 이 또한 한 곳에 멈추지 않는다.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만 듣는 거대한 굉음(轟音)을 깔며 섭리(攝理) 따라 움직인다.
輿地라는 제목(개념)은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가 그 시초다. 땅을 실은 수레라는 (멋스러운) 뜻 여지는 옥편(玉篇)이 자전(字典·글자사전)의 이름처럼 쓰이게 됐듯, 지도의 다른 이름이 됐다.
한때 미원이 조미료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것과도 흡사하다. 옥편은 중국인의 최애(最愛) 보석인 옥을 꿰어 만든 책이라는 뜻이다.
지도는 그림이다. ‘어떤’ 의도를 지녔지만, 바탕은 아름다움을 담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發露)다.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 등을 펴낸 조선 후기 고산자 김정호의 작품세계에서 그 마음의 청향(淸香)을 읽을 수 있는 까닭이다. 현장에서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으리니.
바야흐로,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서양의 독서계(지성계)는 요즘, 한 역사적인 우리 지도가 인간 시공간의 시야(視野)와 시거(視距)에 어떤 광채를 던졌는지 새롭게 명상한 장관(壯觀)에 마음 설레기 시작했다.
우리가 인쇄술과 기록문화, 훈민정음과 대동여지도의 겨레임을, 세계 지성을 이끌어온 뛰어난 인문학의 거봉(巨峯)임을 실물로 입증하는 책 한 권이 MZ세대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소문만으로 화제가 된 신간 ‘1402 강리도’를 서둘러 사서 읽고 있다.
새 대동여지도로 설레는 요즘, 고산자(古山子)를 움직인 우리 옛 세계지도의 비밀을 톺아낸 그 책 때문에 매일 가슴에 지진(地震)이 난다. 좀 두꺼운 그 책, 실린 輿地들도 꼼꼼히 보고 독자께 알려드릴 터다.
지도는, 이렇게 문명인류 종횡(縱橫)의 맨얼굴을 품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