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를 지킨다

2023.05.10 06:00:00 13면

거리 현수막 등 ‘막말 정치’를 당장 멈추라

2023년 봄 대한민국은 정치 현수막으로 거리 곳곳이 더러워지고 있다. 정치라는 이름 아래 용산에서, 여의도에서 평행선을 그으며 극단으로 치닫는 이전투구식 싸움판이 시민의 생활공간 속으로 파고들어 적나라하게 재연되어 펼쳐진다.

 

현수막이 차지한 곳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나 국민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자리를 잡을 공간이 없다. 독선과 아집, 공격만이 우뚝 서있어 타협과 양보를 뿌리로 하는 민주주의는 위태롭다. 가끔식 정제된 표현도 보이나 아주 적은 숫자에 불과하다. 현직 대통령은 나라 팔아먹는 ‘매국노’이고, 야당은 ‘돈봉투에 쩐’당이다. 적과 아군으로 구분하는 군사문화적 잔재와 선과 악으로 세상을 보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반한 ‘낙인찍기’식 프로파간다 전술이다. 현수막 홍수 속 시민들은 눈에 강제로 들어온 문구를 수동적으로 읽고 화가 난 상태로 출퇴근하고, 학교에 가고, 시장에도 간다. 정치권이 현수막을 매개로 분노유발자가 된 느낌을 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거리의 일반현수막은 지자체가 지정한 장소에만 게시하도록 되어있으며, 관할 구청 등에서 거리에 난립하는 불법 현수막을 수시로 단속해 철거한다. 목 좋은 그 자리에 선거 때가 아닌 평상시에도 정치구호가 범벅되도록 법을 만든 곳도 정치권이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옥외광고물관리법(8조)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지자체 허가 아래 지정된 곳에만 걸 수 있었던 정당 현수막이 아무 곳에나 15일간 자유롭게 걸릴 수 있게 된 때문이다. 법 개정은 통상적인 정당 활동을 보장한다는 취지였지만, 여야가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현수막은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비방적 내용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막말정치는 현수막뿐만 아니다. 개신교단 한 목사는 광화문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등 추종자 집회에서 전직 대통령을 “문재인 그 개××, 빨갱이”이라고 입에 달고 산다. 탈북자 출신으로 강남구 국회의원은 상대당을 JMS당(쓰레기-돈-성)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 말을 작명하는 참모나 그것을 받아 발표하는 의원이나 제 정신이냐고 묻고 싶다.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는 2016년 9월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의 좌우명으로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를 지킨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를 제안하는 명연설을 남겼다. 이는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해 “TV 속 유명 인사들이 말하는 혐오스러운 언어가 진정한 이 나라의 정신을 대변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잔인하거나 약자를 괴롭히는 행동을 할 때, 그들의 수준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는 고민 끝에 나온 것이었다. 당시 미국의 정치적 환경이 언론인 출신의 막말 전문가가 대통령 후보로 나와서 지구촌의 화제를 몰고 다녔던 시절이다. 지금 우리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1993년 삼성 이건희 회장이 “한국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 라는 발언으로 세계화 시대를 맞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 적이 있다. 30년 지난 지금 기업은 1류가 탄생했고, 행정도 문화도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했다. 한국의 정치는 발전하고 있는가? 먼저 정치현수막을 철거하라. 못하겠다면 당내 자율위원회의 심의를 거쳐라. 기준도 세우기 바란다. 막말의 정치언어도 고쳐라. 수기치인, 먼저 자신을 닦고, 정치를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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