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보약] 나를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   

2023.05.24 06:00:00 13면

 

2달쯤 전이었다. 70대 중반의 그녀와 친우분들이 오셨다. 모 종교의 회합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올라오시는데 함께 진료를 받으러 들어왔다고 했다. 잠도 잘 못 자고 변비도 심해서 치료가 필요한데 혼자서 잘 안 가니 같이 치료받으러 오는 거라며 껄껄껄 웃으시는 친우분들이 따뜻했다.

 

그렇게 치료를 시작한 지 1달 후에는 변비약 없이 대변을 볼 수 있어 기뻐했는데 며칠 전 입맛이 없어서 못 먹었고 그래서인지 기운이 하나도 없다고 보약을 지어달라고 내원하셨다. 음식은 특이사항이 없었는데 식체가 있고 화병 소견을 보였던 분인지라 “신경 많이 쓰신 일이 있었어요?” 여쭈어보니 최근에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고 속상하며 자책했고 그때부터 입맛이 거의 없었다고 하신다. 몸과 마음은 하나와 같기에 마음의 긴장과 억울함은 식욕, 소화, 배변 기능에도 영향을 준다.

 

그녀에게 자기자비(self-compassion)가 필요했다. 몸과 마음 모두를 위해서 그렇다. 자기자비는 여러 연구에서 치료 효과가 보고되고 있다.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하고 행복감을 증진시키고 면역력을 강화한다. 침 치료를 하면서 그녀에게 “OOO(그녀의 이름)야. 사느라 애썼다. 수고 많다.”고 해주라고 했다. 이름을 부르는 건 자신에 대해서 거리를 두어 보는 방법이다. 수고했다고 하는 건 자신의 성격, 환경, 한계 등 여러 조건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어떠했던 노력 하며 살아왔던 자신의 노고에 대한 인정, 그러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수용을 위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껏 살면서 나한테 수고했다, 애썼다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네요. 예전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해주라고 하던데” 한다. “맞아요. 어머님. 지금 하시는 것도 자기를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이에요.”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불쑥 자신의 결혼생활 이야기를 꺼내신다. 결혼 처음하고 남편에게 많이 놀라고 무서웠다는 말과 함께.

 

 그녀에게 “OOO야 결혼해서 남편에게 적응하고 시댁 식구에게 맞추고 아이들 키우고 사느라 참 많이 애썼다”라고 말해주라 했다. 그러니 “별로 잘한 것도 없는데.” 하신다.

 

“어머님. 철모르던 마음 여린 스무 살에 시집와서 무섭게 느껴지는 남편에게 말 한마디 잘 못 하고 견디고 사셨던 거 아녜요. 아이들 낳고 그 아이들 잘 키우려고 노력하며 사셨잖아요. 애쓰셨잖아요. 그 노력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아줘야지 않겠어요.?” 그렇게 말하니 "그래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살았지." 하신다. 

 

“계속 침 맞으면서 수고했다 애썼다. 자신에게 말씀해주시고 침 맞고 계세요.” 하는 처방 혹은 부추김이 있은 얼마 후 “휴지 좀 주세요.” 하신다. 치료실의 커튼을 조용히 닫았다. 커튼 뒤로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소리 없이 하염없이 우는 듯한 기척이 든다. “살면서 이런 말을 해보는 게 처음이네.”하고 몇 번을 되뇌신다.

 

팍팍한 세상, 자신에게 보내는 격려, 그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배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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