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들킨 죄(罪)’

2023.06.07 06:00:00 13면

 

어떤 사람이 지혜 높은 스님을 찾아가 털어놓았대요. “스님. 제가 한동안 마약에 손을 댔다가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껄껄 웃으며 “그걸 왜 들키고 그래요?” 하는 바람에 찾아간 사람이 어안이 벙벙해졌대요. 스님은 “석가모니도 비틀즈도 다 마약하면서 새로운 경지를 연 사람들이에요. 다만 국가가 언제부터인가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게 죄가 되었던 것뿐이죠”라고 말하더래요. 


스님의 마지막 말이 걸작이었다네요. “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은 없어요. 다만 두 부류가 있지요. 자신의 죄를 ‘들킨 죄인’, 자신의 죄를 ‘들키지 않은 죄인’이 있을 따름이지요.” …언젠가 신문에서 이 글을 읽다가 무릎을 친 적이 있어요. 엉뚱하게도, “누구든 죄 없는 자 있다면 나서서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외쳐서 위기에 처한 간음 여인을 구했다는 예수님 생애 일화가 생각났죠. 


요즘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서 문득 ‘들킨 죄(罪)’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우리 사회에는 이미 만연돼 있는데, 아닌 척 살아가는 비리들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그중에 ‘뇌물’보다 더 끈질기고 고약한 풍습은 없는 것 같아요. 거액의 경제 문란 사건을 필두로, 모든 사건 뒤에는 ‘금품수수’라는 점잖은 표현의 ‘뇌물’이 존재하지요. 하긴 끔찍한 강력 사건 뒤에도 늘 ‘여자’와 ‘돈’ 문제는 따라다니기 마련이죠.


최근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정치권 인사들은 물론, 일반 국민도 혹시나 ‘들킨 죄’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범죄가 발각되어 뉴스를 장식할 때, 그 사건을 바라보는 구성원들의 내심이 “참 나쁜 사람들이네”가 아니라 “재수 없게 걸렸구먼”의 수준이라면 이미 그 사회는 심각한 가치관 혼돈에 빠졌다는 증거예요. 그래 지금 우리는 어떤 형편인가요? 


역사적으로 세상에는 ‘들킨 죄’보다도 ‘들키지 않은 죄’가 더, 심지어는 압도적으로 더 많을 것이라는 추론은 얼마든지 가능해요.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는 명시적으로, 또는 풍문으로 그런 이야기는 흐드러졌잖아요. 그런데도 불과 몇 퍼센트도 안 되는 ‘들킨 죄’ 소란을 놓고 흥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정서는 그런대로 괜찮은 건가요? 어떻게 해야 진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될까요.


머지않아, ‘배신 손실’이나, ‘처벌’, ‘보상’보다도 더 큰 ‘배신 이득’ 때문에 일어나는 고전적인 ‘죄수의 딜레마’ 현상을 숱하게 보게 될지도 모를 것 같네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실제 현상의 100분의 일, 1000분의 일에 불과할지라도 그 긍정적인 효과가 파탄보다도 크다면 집행해야 한다는 법(法)의 논리를 추월할 다른 묘방이 없는 한 ‘들킨 죄’를 정죄하는 일이라도 멈출 수는 없겠군요.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재수 없다’고만 여길 그네들 속마음을 생각하면 그저 씁쓸할 따름이네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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