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응급실 뺑뺑이…‘의사 확보’·‘병상 데이터 통합’만이 해법

2023.06.07 06:00:00 13면

탁상행정 말고 정부-의료계 머리 맞대어 근본 대책 세워야

최근 경기 용인시에서 응급 이송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중상을 입은 70대 남성이 원거리 병원까지 이송되다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잊을만하면 일어나는 이런 후진국형 비극이 이 나라에서 도대체 왜 그치지 않는 것인가. 정부 당국은 탁상행정 결과만 앵무새처럼 반복 발표하지 말고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고 현장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응급의사를 더 확보하여 배치하고, 각급 병원의 병상 데이터를 통합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난달 30일 새벽 경기도 용인에서 70대 남성 중환자가 받아줄 수 있다는 응급실이 없어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사망했다. 지난 2월엔 대구에서 10대 여성이 추락사고로 중상을 입었지만, 응급 수술을 감당할 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응급차 안에서 숨졌다. 


‘응급실 뺑뺑이’ 사례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지난 5년간 119구급대 1차 재이송 건수는 3만1673건, 2차 재이송은 5545건으로 총 3만7218건에 달했다. 재이송 사유를 보면 전문의 부재가 1만1684건(31.4%)으로 가장 많고, 병상 부족 5730건(15.4%), 환자 변심 1722건(4.6%) 순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이 문제를 해묵은 ‘의대 증원’ 논란으로 몰아가려고 하고 있다. 의사협회 등의 견해를 분석하면 ‘필수 의료 시스템’ 붕괴 현상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경기도 내 ‘달빛어린이병원’이 청소년 26만3천 명당 단 1곳으로 턱없이 부족한 것도 낮은 의료수가(醫療酬價) 문제다. 의사협회는 필수 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전공의·전문의를 포함한 필수 의료 분야 인력 행·재정적 지원 강화, 근무환경 개선, 필수 의료 분야의 수가 인상 등 다각적인 지원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선진 의료수준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응급실 뺑뺑이 같은 후진적 참상을 개선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실제 응급의료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형 응급환자분류도구(KTAS) 4~5레벨로 꼭 응급실이 아니어도 되는 환자가 50.5%로 절반이 넘고, 74.3%가 증상이 호전돼 응급실에서 귀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경증 환자를 빼서라도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이 또한 현장 이야기와 다르다. 육안상으로 경증 환자라고 판단해 돌려보냈다가 잘못되는 경우 의료진은 난처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응급환자들은 모두가 자신을 ‘중환자’라고 생각한다. 


카이스트(KAIST) 경영대학원 문송천 명예교수의 조언이 눈에 띈다. 문 교수는 “금융정보분석원(FIU) 혐의거래시스템처럼 의료기관별 데이터를 통합해 남은 병상을 찾아내야 응급환자 사망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병원 간 데이터를 단순 연결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통합해 응급실 내 정확한 잔여 병상 수를 3초 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응급실 뺑뺑이 현상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이 나라 의료계의 현안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현장을 중심으로 깊숙이 들여다보고 정밀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단지 의사·병원·병상을 못 찾는다는 이유로 우리 국민이 길거리 앰뷸런스 안에서 자꾸만 객사한다는 게 될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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