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1402 강리도’의 의미와 재미를 전해드리겠다고 전에 언급했었다. 좀 늦게 이제야 그 기억을 치켜들었다. 두툼한 책, 재미있었다.
우선 이 책의 힘으로 ‘지도의 날’이 만들어진 것을 알려 드린다. 책 읽은 감동을 공유한 전문가들과 관련 단체, 예술가 시민 등의 열성이 하늘을 찌른 결과다. 겨레가 지도학으로 인류에 기여했음을 확인하는 뜻이다.
6월 23일 강원대에서 열린 대한지리학회에서 관계 전문가들은 매년 9월 첫 토요일을 ‘지도의 날’로 선포했다. 세계의 지도 관련 중요한 책들의 상당수는 이 지도를 표지 그림으로 쓴다. 세계사적 의미를 짐작하자.
지도에서 넓이는 ‘정치’다. 조선이 중국과 비교될 만큼 크다. 인도 아라비아 아프리카보다도 훨씬 크다. 선조들, 눈 들어 중국 땅 힐끔 흘겨보고 인도양과 파로스등대의 지중해, 베네치아 파리 찍고 포르투갈 호카곶과 남서아프리카 오렌지강까지 삽상(颯爽)하게 관조했다.
그 시기, 강리도 작가들은 사대주의(事大主義)를 그렇게 찢어버렸다. 후손들 혹 쩨쩨해질까봐 통찰의 착목(着目) 지점을 멀고 크게 잡은 것이리. 공공(公共)의 용도로 널리 쓰인 지도는 아니었을 것으로, 저자 김선흥 선생은 판단한다. 가슴 뛰는 지도다.
이어 27일엔 광주광역시의 시민공간 카페 싸목싸목에서 선포 축하모임이 열렸다. 강리도에 알프스 산맥보다 멋지게 그려진 무등산 그림을 의미롭게 여긴 광주의 열기가 계기가 됐다.
양보경(前 대한지리학회장·전 성신여대총장) 김현명(전 駐 이라크대사) ‘지도의 날’ 제정 추진 두 공동위원장과 저자 김선흥 전 외교관, 학자 작가 가수 정치인 등이 모여 선포를 기뻐했다.
문화운동가 ‘바위섬’의 김원중 씨는 ‘강리도’의 가사와 곡 지어 ‘느티나무’와 초연했다. 아하, ‘1402 강리도’에 반한 이들이 많구나. 젊은 그 긍지, 기쁜 일이다. 오늘도 세계를 주름잡자.
600여 년 전, 세상 모든 지도 중 아프리카를 처음 그린 지도로 세계 지도 역사에서 찬탄의 대상이다. 1402년 조선 초 우리 선조들의 시야(視野)와 시거(視距)는 놀랍다. 동아시아 변경(邊境)에 서서 세계의 끝에 안신(眼神)을 던진 것이다. 기개(氣槪)다.
그때 우리에겐 중국이 천하 즉 세상의 (사실상) 전부였다. 강리도의 마음은 그 천하의 경계 바깥으로 달렸다. ‘앉아 3만 리, 서서 9만 리’라는 속담도 있지만, 고려말 조선초 강리도 지성들의 안목이 놀랍다.
세계의 지도전문가나 지리학자들도 경탄한다. 그런 여러 기준으로 강리도는 인류의 특급 사료(史料)로 평가되는 것이다. 원본은 아직 우리에게 없다. 일본에서 발견된 강리도를 정성껏 베껴 그린 사본(寫本)으로 아쉬움과 갈증을 달랜다.
강리도(疆理圖)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의 약칭이다. 세계지리와 여러 나라 도시역사의 개요를 하나로 엮은 지도다. 인류문명 융합의 뜻을 저자는 도도히 설명한다.
강리도 크듯, 이 책의 뜻 크다. 글 몇 줄로는 어림없다. 도서관으로 가자, 읽어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