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위기 앞에서 한창기 선생(1936~1997)을 떠올린다. 국제적 감각의 비즈니스맨으로 역량도 다방면으로 뛰어났다. 세상일 특히 언어부문에 깐깐한 ‘문화인’으로 살았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기리는 한글날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까닭이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1980년 전후 엄혹한 시기에 그는 우리 문화를 크게 떨쳤다. 서울법대를 나온 이의 일반적인 행보(行步)가 아니었다. 미국인보다 유창하달만큼 영어를 잘했다. 주한 미군과 가족, 한국의 외국인과 ‘영어 좀 읽는, 잘 사는’ 한국인들에게 (비싸기로도) 유명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아주 잘 팔았다.
그의 실적과 성과에 고무된 브리태니커 미국 본사를 움직여 문화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브리태니커회사를 세우고, 사장이 됐다. 이를 토대로, 남과 다른 생각과 정서를 펼치는 데 거침없었다. 그 역량을 개운하고도 새뜻한 언어로 그려낸 점도 독보적이었다.
신화적인 잡지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 그리고 그가 만든 많은 책들은 ‘뜻’으로 독자를 설레게 했다. 글도 꽤 많이 썼고, 실질적인 편집자 역할로 기자들을 비롯한 필진들과 ‘이녁의 고집’을 공유했다.
‘민중자서전’과 인문지리지인 ‘한국의 발견’ 시리즈는 젊은 지성들이 ‘한국과 한국인’ 자신을 눈 비비고 다시 보는 계기였다. 한글 글자꼴의 ‘혁명’과 함께, 뜻 그려내는 연모인 언어(문장)의 혁신 또한 놀라웠다.
한국어를 뒤집어 ‘말’과 ‘문자’가 ‘생각’과 어울려 더 정직한 뜻을 빚는 말글로 바꿔냈다. ‘한창기의 한국어’라고 할만 했다. 이런 뜻과 틀은 어느새 우리의 ‘지식의 방법’으로 들어앉았다. 시대의 여러 탓으로 그 의미가 제대로 해석되지 않고 있을 뿐, 그의 지성이 세상에 끼친 영향은 자못 웅대하다. 언론 출판 부문만이 아니다.
기껏 장바닥이나 좀 사는 집 잔치를 떠돌던 판소리 같은 민초들의 노래를 살려, 영어와 오선지의 서양 악보로 옮기는, 상상도 못할 일도 벌였다. 인류의 마음을 직격하는 작업이었다. 판소리가 순식간에 세계인들의 괄목하는 레퍼토리에 오른 배경이었다. 그런 노력이 아니었더라면, 남도 어느 장마당에서 주옥같은 저 노래와 연희들이 그만 사그라져 숨을 거뒀을 터다.
그가 주도한 ‘기적’은 차(茶)문화에도 해당된다. 또 ‘우리 음식 담는 우리 그릇’에 대한 높은 안목은 ‘밥상의 클래식’으로 불리는 그릇들을 지어냈다. 이런 안목은 순천의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유물로 확인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 인공지능(AI) 혁명이 인류의 앞날을 안개 속으로 밀어 넣는다. 과학기술, 물질의 개벽이 되레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오리무중(五里霧中) 투전판에 패대기치는가. 온통 어불성설의 패륜(悖倫)이 난무한다.
전에 한창기의 여러 모습을 가까이 만나기도 했던 인연을 아는 이들이 ‘한창기의 생각’ ‘한창기의 한국어’를 상기(想起)해보자고 권하는 이유일 것이다. 한창기의 의도와 통찰, 특히 언어의 슬기와 방법론에서 난세(亂世)의 해결책을 기대함일까.
시간 따라 한창기론(論)도 변하고 빈틈도 생겼으리라. 허나 한창기와 동료들의 작업이 주었던 맑은 울림이 희망의 유력한 방법론이 되고, 이런 의논이 ‘한창기의 미래학’으로 열매 맺으면 빈틈도 맛난 고명일 터, 사정 아는 몇 사람이나마 모여 작은 모임이라도 가져 볼까나.
강상헌 언론인·아시아인문재단 슬기나무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