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 사랑을 잃고 울지 않으려거든

2023.09.19 06:00:00 13면

 

나에게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숲 속으로 가라’는 말과 같다. 집 근처에 물기 마르지 않고 사철 푸른 산 속 숲이 있어 아침저녁으로 긴 시간 들이지 않아도 숲의 품에 안기어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숲속 공기는, 우선 콧속을 통해 호흡기와 폐를 맑히며 냉기 어린 맛감각이 나의 두뇌를 일깨워 사유하고 상상하며 정리하게 한다. 그런 뒤 귀한 문장을 얻어내는 길을 닦아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달 초순이었다. 체육회관 3층 헬스장에서 달리기 운동을 하던 중 유리창 밖으로 ㅇㅇ초등학교 정문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운동을 멈추고 더 가까이 가서 보았다. “서이초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합니다. 선생님께서 남기신 그 뜻을 잊지 않겠습니다. ㅇㅇ초등학교. 49제를 맞이하여”라고 검은 천에 흰 글씨로 쓰여 있었다.

 

사노라니 못 볼꼴을 본 것이다. 초등학교가 장례식장도 아니요 교사가 무슨 독립운동가도 아니며 역전의 용사도 아니다. 그런데 왜 목숨을 버렸을까. 어린이들은 한 생명으로서 푸릇푸릇 움 돋아 가정에서 핀 꽃 학교라는 묘판으로 옮겨져 교정에서는 사랑의 함성 가득하고 행복하게 웃는 어린이들 모습으로 평화로워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교문에는 검은 천에 죽음의 글자를 새겨 아이들에게 보라고 해놓았다. 등교하는 어린들이 안 볼 수만 있다면 싶었다.

 

학부형의 갑질행태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의 이용 문제가 도를 넘은 것 같다.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아이들이 손잡고 발맞춰 춤추며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봉숭아도 나팔꽃도 피었다.’고 노래해야 할 학교 마당 앞에 죽음을 나타내는 근조(謹弔)의 현수막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초등학교 교사들이 거리로 나와 소리 높여 외쳐야만 하고 한 달 동안 세 명의 교사가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일본에서는 핵실험 찌꺼기 오염수를 몇십 년을 바다에 버리겠다고 하고서 흘려보내고 있다.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다. 그렇다면 바다를 죽이는 것은 자연 살해(殺海) 행위가 아니겠는가. 이태원 참사에 이어 폭우로 인한 물 참사, 교사들의 죽음과 외침!- 이게 사는 것인가, 여기에 따른 법 처방은 없다는 말인가. 세계 어디에서 교육자의 자살이 이처럼 자행되고 있는가?

 

내가 학교에 재직하고 있을 때의 각오는 그랬다. 아이들이 ‘때로는 엄하지만 재미있는 선생님으로 공부시간이 기다려지고 언젠가는 한번 슬며시 기대보고 싶은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어느 날 수업시간이었다. 한참 수업을 하는데 방귀가 나오려고 했다. 참다못해 뿡! 하고 방귀를 뀌었다. 큰소리로 웃어대는 아이들에게 나는 말했다. ‘방귀를 뀌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지만 나의 건강에는 유익한 일이다.’라고.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웃어댔고 그 시간은 쉽게 지나갔다.

 

많은 사람이 돈과 권력으로 갑질행세하기 위해 살고 있는가 싶을 때가 있다. 학부형으로서 자식을 잘 가르쳐 주라고 선생님에게 맡겨놓고 안 보이는 곳에서는 자기가 무슨 인사권자인 듯 갑질행세를 하는 천박스러운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게 치욕스럽다. 법 좋아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이런 사회에 쓸 보약 같은 법 처방은 없는 거냐고.

 

선생님들을 중소기업체 근로자 같이 대하는 사회의 미래는 사랑이 없는 인간의 허울뿐일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독거노인이 되기 전에 나도 당신도 사랑을 잃고 눈물 흘리게 될 것이다.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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