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칼럼] 그게 그렇게 힘이 드는 얘기일까

2024.01.18 06:00:00 13면

 

영화가 다양하다는 건 영국 켄 로치가 만든 ‘나의 올드 오크’처럼 사회주의적 이상을 지향하는 작품도 있고 ‘위시’같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도 있으며 핀란드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로맨틱 코미디같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 ‘사랑은 낙엽을 타고’같은 것도 있는데 한쪽에서는 ‘길위에 김대중’같은 다큐멘터리가 조용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대형 상업영화 작품인 ‘서울의 봄’이나 ‘노량 : 죽음의 바다’가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이런 모양새가 바야흐로 다양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대중의 취향이 어느 쪽으로 쏠릴 것인 가하는, 소비와 수용형태의 문제와는 별개로 일단 판 자체는 아주 잘 깔아 놓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시장이 다양해져야 대중들의 취향도 다양해진다. 그때서야 드디어 한 두 편의 영화가 전체 관객의 거의 전부를 가지고 가는 편중 독점의 현상이 줄어들게 된다. 모든 영화들이 비교적 골고루 관객을 나눠 가지게 된다. 바야흐로 시장이 안정될 수 있는 모토이다.

 

요즘 들어 벼라 별 정당이 다 속출하는 모양이다. 이른바 제3지대가 만들어질 모양이며 정치도 영화가 추구하는 것 마냥 다양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다들 비슷비슷한 이름인 데다 창당의 이유들도 거의 다 같아 보인다. 미래 비전은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 다들 자신들에게 권력이 생기면 진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자후만 토할 뿐이다. 정치와 영화는 공통점이 많은데 둘 다 상상력의 공간이 매우 넓다는 것이다. 상상력이 뛰어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생각이 창의적인 정치인이 표를 많이 얻는다.

 

영국 역시 보수당과 노동당의 거대 양당 틈바구니에서 자유민주당이라는 제3당이 활동하고 있다. 기존의 노동당 온건파들이 떨어져 나와 사민당(사회민주주의당)을 만들었고 이 사민당이 소수 정당이었던 자유당과의 합당을 통해 만든 것이 자유민주당이다. 2010년 13년만에 보수당으로 하여금 정권을 탈환하게 한 주역인 젊은 정치인 데이비드 캐머런(당시 44세)은 자신이 중도의 오른 쪽이라면 중도의 왼쪽을 차지하는 자유민주당의 닉 클레그를 끌어 들여 연정에 성공하면서 제75대 총리에 취임한다. 당시에 캐머런과 클레그가 손을 잡은 것은 예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나중에는 대중들의 신뢰를 잃으면서 당시의 연정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긴 했다. 그러나 그 실험만큼은 혁신적인 것이었고 그 덕인지는 모르겠으나 보수당은 현재 10년이 넘게 정권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니 결국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없으면 늘 같은 얘기를 지루하게 반복한다. 대중들은 냉혹하다.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지리멸렬해지면 가차없이 재미없는, 의미도 없는 작품이라는 입소문을 낸다. 디지털 시대의 입소문은 워낙 천리를 한번에 달리는 적토마 수준이라 영화판을 한 순간에 바꿔 버린다. 영화 만큼 ‘물갈이’에 있어 달인 수준인 곳도 없다. 정치판이 좀 재미있어졌으면 좋겠다. 상상력이 풍부해졌으면 좋겠다. 정치인들은 조금 더 유연해지고 세련되면 좋겠다. 패션 감각도 좀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유머를 구사하는 능력이 조금이라도 높아졌으면 좋겠다. 오로지 국가니 국민이니 하면서 입에 발린 어휘들만 남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영화들 좀 많이 봤으면 좋겠다. 적어도 분기 별로 1편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그게 그렇게 힘이 드는 얘기일까.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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