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의 예술엿보기] 아픈 이에게 위로를 주는 그림치료

2024.02.19 08:51:58 16면

미술치료, 미술과 심리학의 결합으로 마음의 안정
예술이 주는 따스함으로 질병 치료에 유용하게 활용

□ 마지막 잎새, 미술치료였나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던 여류화가 존시를 위해 노화가가 그려준 나뭇잎 하나가 그녀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는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는 웬만한 사람이면 다 읽었을 것이다. 노화가의 잎사귀 그림은 비록 존시의 폐렴을 직접적으로 치료하지는 못하지만 절망한 존시의 마음에 희망을 주었으니 이것도 일종의 미술치료가 아닐까? 

 

미술 치료는 미술과 심리학의 결합으로 미술 활동을 통해 내면 세계를 표출하고 감정을 이완시켜 마음의 안정을 찾는 치료법이며, 음악치료와 함께 여러 질병 치료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미술치료의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정신분석적 미술치료는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정신분석 이론을 근거로 진행하는 치료이다. 행동주의적 미술 치료는 행동 치료 기법을 미술 치료에 적용하여 모델링한 것이다. 게슈탈트 미술 치료는 워크샵 형태로 통합과 현재의 경험을 중시하는 치료방법이다. 

 

그 외에도 미술 치료방법은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으며, 환자의 상태나 병의 종류에 따라서는 효과적인 결과를 내고 있다. 특히 미술 치료는 우울증, 불안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정신적 질병 뿐만 아니라 암과 같은 중대질환이나 만성질환 환자의 심리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미술치료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병의 완화나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경험으로도 말할 수 있다.

 

 

 

 

6년 전 내가 파킨슨병을 진단받아 병 자체의 고통보다도 더 심하게 우울하고 힘들었을 때, 선물처럼 나에게 온 그림들로 인하여 큰 위로를 받았었다. 

 

안기호 작가의 “그대 앞에 봄이 있다2”는 활짝 핀 개나리를 바라보는 그림 속 여인이 마치 나 자신인 것 같아 따뜻한 위로가 되었고, 전정자 작가의 “파도”는 시원하게 밀려오는 물살의 기운으로 힘을 낼 용기를 주었다. 

 

또한 버려진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어 물고기 그림으로 부활시킨 이정인 작가의 작품 “물고기(블루)”에서는 새 삶의 희망을 얻었다. 이 그림들은 지금도 나의 사무실과 방에서 나를 위로해주고 있다.

 

□ 병원 안에 갤러리 있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가천길병원, 고대구로병원 등 셀 수 없이 많은 대형병원들은 병원 내에 수준 높은 갤러리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중소병원에서는 갤러리를 운영하지는 못하지만 환자 대기실이나 병실, 치료실에 원화 그림들이 많이 걸려있다.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환자나 환자의 가족, 환자를 방문한 사람들이다. 특히 환자 자신은 입원하고 있는 동안 동일한 전시를 몇 번이고 보러 오기도 한다.

 

구채연 작가가 아산병원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동안 고양이 그림 앞에서 눈물짓는 '별이 할머니'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온몸에 암이 퍼져있다는 할머니.

"아픈 건 난데, 영감도 뇌종양으로 입원해서 내가 간병하고 있어요."

 

가만히 안아드렸어요.

“고양이 좋아하세요?”

 

“우리 별이가 노란아인데 내가 오라면 오던 아이인데, 

내가 아파서 긍가 나 힘들지 말라고 지가 먼저 갔지 뭐야. 

오메오메! 우리 별이가 여기 있네.” 하시며 우시네요. 

 

저도 울컥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꾹 참고 

그냥 안아드리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어요.

 

-구채연 작가 페이스북에서 발췌-

 

나는 이 글을 읽고 "그림이 정말 필요한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아프거나 힘든 상황에서는 감정적으로 더 예민해지고 어디 기댈 곳을 찾기 때문에 미술은 그 마음 속에 더 파고들 수 있으며 그것이 때로 치료의 효과를 내기도 한다. 

 

전시장에 가야만 볼 수 있었던 화가들의 원화를 병으로 약해진 환자가 병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마지막 잎새 한 장으로도 삶의 희망을 가질 수 있듯이 화가의 마음과 혼이 담긴 원화는 보는 이들에게 플라시보(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병세가 완화되는 것) 효과를 주기도 한다.

 

□ 보건소에도 갤러리가 있다

 

지난 1월 19일에 전국에서 최초로 보건소에 갤러리를 오픈한 곳이 있다. 바로 가평군 보건소이다. 보건소는 병원에 비해 검사비나 진료비, 예방접종비 등이 훨씬 저렴하다. 

 

각 자치구마다 보건소가 있으며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치과치료를 제외하고 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서 생각보다 이용자가 많다. 또한 그 이용자들이 전시를 관람할 기회를 자주 얻지 못하는 노인층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가평군 보건소에 설치된 갤러리는 더욱 의미가 있다.

 

 

가평군 보건소에서는 복도 벽면을 활용하여 지역 미술가 작품 65여 점을 전시하였다. 비록 전문 갤러리처럼 전시 전용공간을 따로 마련한 것은 아니지만 무미건조하고 단조롭기만 했던 보건소의 복도를 따뜻하고 멋진 공간으로 꾸며서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벽면에 걸린 그림들은 조명을 받아 빛났으며, 그곳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더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갤러리 오픈 기념 첫 전시회는 “따숨전”이라는 이름으로 가평군과 미술협회가 공동 주관하여 시작되었다. 앞으로 가평군보건소 갤러리는 1,2층 복도에 6개월마다 새로운 작품으로 교체하여 전시를 지속할 예정이다.

 

 

2021년 12월 기준으로 전국의 보건소와 보건지소, 건강생활지원센터, 보건진료소는 약3,600개소나 된다. 그리고 각 지역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창작에 밤을 지새고 있다. 반드시 고흐나 모네 같은 유명화가의 작품을 보는 것만 힐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아직은 무명인 화가가 수많은 서민들에게 알려진다면 어느 순간 국내외에 이름을 떨치는 작가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우리 아이들이 그린 작품들도 우리에게는 큰 감동을 준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생겨서 좋고, 보건소 방문자들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고, 보건소는 따뜻한 문화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어서 좋다. 이런 것이 바로 예술의 생활화이다.

 

때로 감동받은 작품이 있다면 모아둔 용돈으로 그림 한 점 구입하는 것도 정신적으로 훌륭한 보상이 될 수 있다. 유럽의 가정에는 비록 부자가 아니어도 최소한 한 점 이상의 원화가 걸려있다. 

 

그리스가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을 때에도 그리스에서 열린 아트페어에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방문하여 서로 그림을 보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문화의 격조란 저런 거구나 깨달은 적이 있다.

 

공공미술관이 없고, 주민들이 미술 작품을 만날 기회가 적은 곳일수록 가평군 보건소 갤러리를 모델삼아 보건소갤러리를 꾸며보는 것도 미술치료와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일이 아닐까? 

 

[ 글 = SG디자인그룹대표. 시인 권은경  ]

권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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