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의 예술엿보기] 스토리를 따라 그림 엿보기-브렌트 린치

2024.03.04 10:31:20 16면

■ 그림 감상 맘대로 하기

 

그림을 가장 잘 감상한다는 건 어떤 걸까? 그림의 사조와 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의 기법을 이해하고, 작가의 정신세계와 생애를 탐구해야만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까? 

 

물론 예술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으면 더 깊이 있는 연구는 가능할 것이다. 또한 예술을 지속적으로 접하다 보면 이론이나 사조, 미술사 같은 체계적인 지식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때로는 어떤 정보나 지식이 없이 마음을 열고 예술작품을 만나서 내 마음 가는 대로 감상하는 것도 아주 근사한 경험이 된다. 일단 작가가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후에는 이미 그 작품은 감상자의 손에 넘겨진 것이다. 

 

■ 봄바람처럼 살랑-브렌트 린치 그림 보기

 

이제 봄, 3월이다.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설레는 그림으로 스토리텔링을 해보자.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 그의 그림은 강렬한 컬러의 대비 속에 깃들어 있는 고요함, 아니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세련된 고독, 다가가고 싶으나 언제나 혼자이고, 혼자이지만 언제나 기대어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스산해진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브렌트 린치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인가 생각했었다. 

 

묵직하면서도 강렬한 색상의 대비, 빠져들 듯한 분위기, 그러나 뭔가 다른 어둡지만 너무 무겁지는 않은, 외로움이 깃들어 있지만 끝까지 혼자이지는 않은, 부드럽게 그림끼리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 음악이 흐르는 청각적인 울림, 알고 보니 이 그림들은 브렌트 린치의 작품이다. 

 

브렌트 린치는 초기에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이벤트를 비롯해 발레, 오페라, 연극 등의 이벤트 포스터와 레코드 커버 등의 작업을 많이 했다.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의 수많은 국제적인 상을 휩쓸었고, 그의 작품은 개인 소장뿐 아니라 공공기관, 대형 건물에 걸리는 단골 작품이 되었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오늘은 재즈 선율이 흐르는 카페에서의 매력적인 장면을 표현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보자. 

 

 

빨간 그림(벽)을 마주 대하며 바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의 멋진 뒷모습. 격을 갖춘 슈트에 중절모를 쓰고 왼손으로 칵테일 잔을 잡고 있다. 담배를 피우며 약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알고 보니 오른쪽에 아름다운 여인이 칵테일 잔을 들고 서 있다. 부드럽게 드러낸 어깨선과 얇은 어깨끈이 도발적인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다. 이 여자, 일부러 이 남자 옆으로 와서는 어깨에 걸쳤던 까만 숄을 우아하게 벗어 오른팔에 걸치고 칵테일을 시킨 건 아닐까?

 

이 두 그림을 나란히 배치하면 한 장면에서 곧 일어날 썸(?)을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아주 정적인 그림이 묘하게 긴장감을 주게 된다. 

 

 

All that Jazz......

피아노로 재즈곡을 연주하고 있는 이 사람,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가의 뷰가 감각적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에 하얀 피아노 건반이 화면을 사선으로 갈라놓은 레이아웃 또한 탁월하다.

 

차분하고 정적으로 느껴졌을 법한 피아노 치는 광경이 작가의 이런 과감한 시선(View)과 배치(Layout)로 음악에 따라 움직이는 듯한 리듬감이 살아난다. 

 

피아노 위에 놓인 칵테일글라스, 살짝 부분만 보이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피아노에 반사되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피아노 옆에서 한 손을 피아노 위에 얹어 몸무게를 기댄 채 정열적인 레드 드레스의 여인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라질 듯 말 듯, 속살거리듯, 품위 있는 섹스 어필한 목소리로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샹들리에가 살짝살짝 반짝거린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화면을 가르는 그랜드 피아노의 형체가 까만 피아노에 기댄 붉은 드레스 여인의 부드러운 곡선을 더 우아하게 만들어준다. 

 

이 두 그림도 나란히 배치하면 피아노 치는 남자와 노래하는 여자의 화기애애한 한 장면을 볼 수 있다. 

 

재즈 음악이 창밖으로 흐르는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는 조금 전 자리에 앉은 여인이 아페리티프(식전에 마시는 술)를 마시며 식사를 주문하고 있다. 웨이터는 정중하게 주문을 적고 있다. 

 

도회적인 세련미가 넘치는 블루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늘씬한 다리에 아름다운 힘이 넘친다. 

 

하얀 테이블보에 하얀 파라솔, 바닥에 비친 그림자, 선글라스, 뒤로 머리를 묶은 여인의 모습에 신선한 밤바람이 느껴진다. 

 

 

건너편 테이블에는 편안한 차림의 남자가 주문한 칵테일을 이제 막 서빙 받으려고 하고 있다. 

아무렇게나 꼰 다리와 타이를 매지 않은 셔츠가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브렌트 린치의 대표적인 작품은 이렇게 카페라는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시추에이션을 여러 작품으로, 그러나 마치 우리가 그 장소에 가서 여기저기를 훑어보듯 연관 있게 그려 감상자에게 색다른 재미를 준다.

 

 

장소는 달라졌으나 역시 카페에서의 작품과 같이 유사한 공간 속에서 다른 시추에이션을 연결하듯  스토리텔링적인 시도를 한 작가의 재치가 엿보인다.

 

파티가 열리는 궁전(?)쯤 되는 곳의 야외 분수대 앞. 시간은 아마도 밤으로 가는 즈음인 듯, 불빛이 반짝이고~ 정중하기 그지없는 멋진 신사가 정열적인 레드 드레스의 여인에게 춤을 청하고 있다.

 

이 숙녀는 아주 음전한 듯 고고하게 손가락 끝을 신사의 손에 얹었지만 어쩐지 조금 후의 일을 예고하듯 뒤의 조각상이 심상치 않다. 

 

 

이 그림의 장면은 위의 커플들이 있는 장소와 아마도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인 듯, 이 커플은 이미 춤을 추면서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에 도취되어 있다. 

 

서로 바라보는 눈빛이 별빛 아래 더 반짝이고 수많은 별들 중에서 가장 반짝이는 서로의 눈동자를 발견한 이 신사, 목을 죄여오는 기쁨을 못 이겨 타이를 풀어헤쳤다. 무드에 약한 이 여인, 숄이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꿈에 젖어 있다.

 

반짝이는 별빛처럼 음악이 흐르고,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발 동작이 리드미컬하다. 가로등 불빛이 비친 다리 아래 강물도 아름답다.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감상하기

 

어떠셨는지?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작품들에 나름대로의 감상자의 이야기를 입히면 그 그림이 나에게는 특별해진다. 

 

그림을 그린 이는 화가이지만, 어떤 그림을 감상하고, 선택하고, 좋아하는 이는 우리들이다. 이렇게 감상자가 작가의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면 미술은 어렵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작품과 내가 함께 재미있게 노니는 순간을 맛보게 될 것이다. 

 

[ 글 = SG디자인그룹대표. 시인 권은경  ]

권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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