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이 위성 시대를 꿈꾼 지 40년이 지났다. 1984년 당시 백남준은 ‘1984’를 쓴 조지오웰에게 당신은 절반만 맞았다’고 응답했다. 조지오웰은 파놉티콘으로 상징되는 정보화 사회, 미디어의 발전이 디스토피아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백남준은 기술이 가져온 쌍방향 소통이 오히려 평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24년 현재,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일어나 2024년이야!’는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착안한 백남준의 위성 프로젝터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 40주년을 기념하고 그가 지향했던 세계 평화에 대해 살펴본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뉴욕 라이브 방송, 백남준이 제2차 세계대전 격전지를 찾아 제작한 ‘과달카날 레퀴엠’ 1977(1979) 등 영상 작품과 ‘로봇 K-456’, ‘TV 첼로’ 등 조각·설치 작품 7점을 전시한다. 얼터너티브 케이팝 그룹 바밍타이거와 미술가 류성실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을 기념해 만든 ‘SARANGHAEYO 아트 라이브’전시도 이어진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과달카날 레퀴엠’, 1977(1979)을 볼 수 있다. 과달카날 섬은 서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섬 중 하나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일본군의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다. 백남준은 동료 샬럿 무어먼과 함께 과달카날을 찾아가 군인과 주민을 인터뷰했다. 무어먼의 퍼포먼스와 백남준의 실험 기법은 전쟁 없는 사회를 향한 바람을 담았다.
이어 볼 수 있는 작품은 ‘TV정원’이다. 정원에 텔레비전을 놓아 꽃처럼 장식한 것인데, 화면에 재생되는 영상은 ‘글로벌 그루브’(1973)다. 영상의 형태와 색을 변조하고 다양한 자료의 총합인 전자 콜라주로, 세계 각국의 음악과 춤이 흥겹고 현란하게 이어진다. ‘세계 평화와 지구보존이이야말로 공익 제1호이며, 이것이 바로 공영 TV의 제 1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백남준이 기획한 위성 쇼로, 미국 공영 방송 WNET과 각 도시의 방송국, 당대 손꼽히는 예술인과 대중음악 가수들이 협연한 영상이다. 22개의 시퀀스 중 주요 장면이 전시되며 백남준이 위성 기술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만남과 공존의 가치에 주목한다. 전 세계 2500만 명의 시청자들은 이 영상을 보며 소통할 수 있었다.
조지오웰의 소설 속 네트워크 기술은 개인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감시망이었다면, 백남준에게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고 다른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었다. 존 케이지, 멋, 커닝햄, 요셉 보이스, 앨런 긴즈버그 등 당대 예술인이 참여했다.
‘TV 첼로’(2002), ‘로봇 K-456’,1964(1996), ‘TV 부처’, 1974(2002), 칭기즈 칸의 복권, 1993 등 백남준의 설치 작품이 그가 끊임없이 추구했던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실험적으로 보여준다.
2024년 현재, 위성을 통한 예술의 쌍방향 소통은 여전히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얼터너티브 케이팝 그룹 바밍타이거와 미술 작가 류성실이 ‘SARANGHAEYO 아트 라이브’를 통해 평화와 예술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오늘날 평화의 조건을 살펴본다. 시 낭독, 무용, 음악 공연 등으로 이뤄진 퍼포먼스는 거대한 구호로만 존재하는 평화를 신비체험의 수단으로 그려낸다.
18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바밍타이거는 “공연 예술로 관객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것이 저희만의 쌍방향 소통이라고 생각한다”며 “평화라든지 긍정적인 메시지들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전시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백남준이 해석한 1984년과 4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현대 예술인의 작품들과 공감대를 볼 수 있는 전시 ‘일어나 2024년이야!’는 2025년 2월 23일까지 계속된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