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존경하는 법학자 한 분이 있다. 대학총장까지 역임한 그는 ‘대한민국 헌법’을 정독한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헌법을 완독하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그를 한 모임에서 만났다. 소책자를 건네며 헌법 일독을 권했는데 전문(全文)을 끝까지 읽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130조(條)에 달하는 조문들의 법철학적 의미를 자세히는 몰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헌법 내용대로만 된다면 우리 사회가 훨씬 더 성숙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총강(總綱), 국민의 책임과 의무,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 지방자치, 경제, 헌법 개정 순으로 내용이 기술된 것 또한 흥미로웠다.
얼마 전, 필자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소식 하나를 접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민족통일 포기’를 선언하고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기반을 뒤흔드는 중대한 도전이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할 것'을 규정한 우리 헌법을 정면 부정하는 것이어서 그 충격은 더욱 컸다.
북한이 민족통일을 포기한다고 우리마저 그럴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의 비전을 재정비할 절호의 기회가 생긴 셈이다. 그동안의 ‘부국강병’이나 ‘일류국가 건설’, ‘G-7 진입’ 정도로는 부족하다. 본격적인 ‘통일 한반도’를 향해 국력(國力)을 착실히 키워나가야 하고, 재외동포는 물론 세계인들과 함께 협력할 새로운 전략을 디자인해야 할 때다.
과연 대한민국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는 국가인지부터 재확인해보자. 이를 위한 첫 발걸음으로 ‘대한민국 헌법 다시 읽기’를 제안한다. 우선, 국민 스스로가 헌법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지난 4월 총선에서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300명들에게도 헌법 일독을 권해본다. 헌법에서 의원들에게 청렴 의무, 국가이익 우선, 양심에 따른 직무 수행, 윤리실천 규범을 요구하는 이유를 곱씹어보면 좋겠다. 대통령 이하 100만 공직자들도 우리 헌법의 가치들을 끝까지 지켜주길 바란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현행 헌법을 국가의 기본법으로 존중하고, 그 정신과 가치를 현실화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신록(新祿)의 깃든 4월의 이 아침, 그 지혜를 찾고자 헌법 전문(前文)과 제1조를 다시 한번 읽어본다. “불의와 폐습을 타파하고 민족단결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고히 하고 개인의 기회균등·능력발휘와 국민생활의 균등향상은 물론 세계평화·인류공영에 이바지하고 미래세대의 안전·자유·행복을 영원히 확보하자”는 전문(前文)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것만 실천해도 대한민국 앞에는 탄탄대로(坦坦大路)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