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글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런 대목 또한, 고참 기자로서 부끄럽다. ‘충돌과 추돌’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두 단어의 차이를 모르고 쓴 글이 의외로 많다. 졸음운전 사고가 많은 계절, 대개 뒷 차가 앞 차를 들이받는 ‘추돌’이다. 다녀보니, 졸음운전 현실은 자못 심각하더라.
말(의 바탕)에는 뜻이 있다. 또 일점일획(一點一劃)에 뜻이 없는 글자는 없다. 의미를 잃은 말글은 세상을, 자신도 망칠 수 있다. 기자 작가 공보직 등 ‘생산자’의 언어는 더 그렇다.
충돌이나 추돌이나, 그게 그것 아니냐고요... 대충 알고 쓰는 말, 언어생산자에겐 독약이다.
‘말’의 마땅한 지식 없이 ‘글’을 만들겠다는 건, 음치(音癡)가 섹시한 몸매와 용모만으로 가수(歌手)한다고 나선 격이다. 언치(言癡) 기자나 작가를 상상할 수 있을까?
정부의 언어당국 국립국어원도 ‘도토리 키 재기’ 수준인지, 한심하고 안타깝다. 충돌 추돌의 구분(區分)에 대한 ‘유권해석’을 (정부당국이) 저렇게 내린 것이겠다. 다음은 ‘전봇대를 들이받은 것은 추돌이다.’라는 취지의 국립국어원 ‘생산’ 문건에 대한 해설이다. 몇 줄 인용한다.
‘충돌'은 서로 맞부딪치거나 맞섬을 의미하는 단어이므로, 자동차가 뒤에서 (전봇대를?) 들이받음을 의미하는 '추돌'을 쓰는 것이 보다 적절해 보입니다. 다음을 참고하세요.
* 표준국어대사전 : 추돌(追突) 「명사」 자동차나 기차 따위가 뒤에서 들이받음. ¶ 추돌 사고 / 버스 한 대와 승용차 두 대가 부딪치는 이중 추돌이 일어났다. (국립국어원 누리집)
상황설명이 부족한 ‘추돌’은 마치 넌센스 코미디의 대사다. 예문도 이상하지 않는가. 누가 들이받았지? ‘누가 누구를 추돌했다.’는 틀이라야 상식에 맞는 글이니, 틀린 것이다.
추돌은 ‘쫓아가며 들이받은 것’, 곧 追(추)해서 突(돌)한 것이다. ‘전봇대를 쫓아가면서 들이받았다.’는 것이 ‘보다 적절’한가. 생각이 있는 말이고 글일까. ‘국립국어원’ 맞는가.
‘쫓다’ ‘따르다’는 훈(訓 뜻)의 한자 追는 ‘언덕(阜 부)을 가다(辶 착)’는 (두) 그림이 합쳐진 오래된 갑골문의 후손이다. 한글과 함께 적힌 한자는 속뜻의 해석 자료다. 그 ‘追突’에서 속뜻을 읽어내지 못하여, (국립국어원도) 저런 망발을 빚는 것인가.
국가의 언어기관도 저러니, 경찰이나 언론 등은 어떨까? 아마 경찰 조서의 작성이나 (기자들이) 이를 참조하는 과정에서 ‘밝은 눈’이 없었던 것이겠다. 하릴없이 국민은 바보가 되는가.
세균의 전염처럼, 저런 오류는 언어대중을 감염시킨다. 저기 노출된 시민들, 향후에도 ‘승용차가 전봇대를 추돌했다.’고 하리라. 공공언어, 언론의 말글은 국민 국어교과서 역할을 한다.
마무리하자, 뒤에서 부딪치는 것(추돌)도 여러 충돌(衝突) 중 하나다. 그 충돌 중 앞차 꼬리를 뒷 차가 머리로 들이받은 충돌만을 콕 찍어 추돌이라 한다. 충(衝)은 4거리(行 행) 가운데 무거운 것(重 중)이 놓여 있는 그림, 세월 속에서 ‘부딛치다’의 뜻으로 굳어진 글자다.
말과 글은 당신 생각의 주권(主權)이다. 삶의 핵심 매개(媒介)인 것이다. 자소서 기획안 같은 글 중 ‘저런 대목’ 때문에 당신이 여태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 일부 지성인들, 왜 말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가? 여차하면 낭패 본다. 내가 모르면, 검색도 인공지능도 ‘내 편’ 아니다. 언론도 표준 삼기 어렵다. 결론은, 책임도 자기 몫이다.
기계가 작성해주는 대로 할 일인가? 그게 ‘AI 새 시대 당신(의 얼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