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적인 일상] ‘할 일 미루기’

2024.06.24 06:00:00 13면

 

‘할 일 미루기’라는 말은 하나의 온전한, 이미 존재하는 동사처럼 느껴질 정도로 익숙한 표현이다. 나는 할 일을 곧 잘 미룬다.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할 일들을, 치밀할 정도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으로 미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즐겁지 않다. 오히려 괴로운 일이다. ‘아, 이거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나 중얼거림을 반복하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할 일을 미루고 있는 내가 있다.

 

그러다 문득 ‘할 일 미루기’라는 말에 집착하게 됐다. 나는 왜 해야 할 일을 미룰 때 괴로움을 느끼는 걸까?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할 일 미루기는 나쁜 일이니까. 착한 어른이(?)가 되려면 할 일을 미루면 안 되니까. 근데 정말 할 일을 미루는 건 나쁜 일일까?

 

내가 생각할 때 미루기를 ‘당하는’ 할 일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첫째로, 소소하지만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침대에서 일어나기, 설거지, 손톱 깎기, 세탁이 완료된 빨래 널기 등. 이런 일을 미루게 되면 비교적 금방 피해를 보게 된다. 이를테면 지각을 한다던가, 건조된 빨래에서 꿉꿉한 냄새가 난다던가 등. 소소하지만 확실한 책임을 지게 되는 일이다.

 

둘째는 마감 기한이 확실히 정해졌고 작지 않은 일이다. 비행기 표 예약, 공과금 납부, 치과 방문 일정 바꾸기 등. 위 일들의 특징은 그 기간 안에 할 일을 하지 않으면 크게 피해를 보게 된다. 속된 말로 피를 보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는 하긴 해야 하지만 시간제한이 없는 일들이다. 신용카드를 바꾸고 싶어 이것 저것 혜택을 알아보는 일, 집 대청소 등이 있다. 이런 일의 특징은 필요에 의해서 ‘할 일’로 분류 되지만 막상 급하게 하지 않아도 삶에 큰 피해가 없다.

 

마지막으로 미룰 수 있는 일의 종류는 사실 정확히 말하면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이다. 이 일의 예시로는 운동, 독서, 공부 등이 있다. 말 한 그대로, 자기 계발이나 건강의 목적, 즉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스스로 하기로 한 일들이다.  

 

그럼 나는 왜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걸까? 과학적으로는 뇌가 부정적 감정이 생기는 일, 예를 들어 공포, 무력함, 불안 같은 감정을 유발하는 일을 가장 미루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걸 뇌에서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엔 가장 핵심이 되는 이유가 빠진 것 같다. 내가 일을 미루는 이유는, 결국 때가 되면 다 하게 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인간은 참 간사하고 정확하다. 위기 경보가 제때 울린다. 미루고 미루다 도저히 미룰 수 없는 시간이 되면 결국은 그 일을 하게 된다. 내가 ‘할 일 미루기’를 반복하는 것도 거기에 핵심이 있다. 우린 이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즐겁게 할 일을 미뤄보면 어떨까? 이왕 미루는 거 화끈하게, 즐겁게 미루면서 살자. 어차피 그 일을 하게 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미래의 본인이니까. ‘할 일 미루기’를 끊을 수 없다면, 즐기면서 할 일을 미뤄보자.

문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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