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구 박사의 맛있는 인천 섬 이야기] ㉗눈물의 연평도…작가의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

2024.08.18 12:04:11 14면

 

연평도는 전남 영광군 법성포와 전북 부안군 위도 부근 칠산어장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조기 어장이었다.

 

국립수산과학원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참조기의 47%(1957년, 전국 3만 4872톤, 연평도(인천) 1만 6217톤)가 연평도에서 잡혔다는 기록이 있다.

 

1967년 연평도 인구는 3000명 정도였으나, 조기잡이 때가 되면 1500척 정도의 어선이 모여 어부가 1만 3000명, 접객업자가 100명, 접대부가 200명, 중간 상인이 500명 정도로 인구가 1만 3400명 정도로 증가해 인구 이동이 심했다고 한다(이양숙, 연평도 근해의 조기어업, 錄友硏究論集9,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과, 1967년).

 

연평도 조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최고의 대중 가수였던 고 최숙자의 ‘눈물의 연평도’가 1964년 발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조기를 담뿍 잡아 기폭을 올리고

온다던 그 배는 어이하여 아니 오나

수평선 바라보며 그 이름 부르면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태풍이 원수더라 한많은 사라호

황천 간 그 얼굴 언제 다시 만나보리

해 저문 백사장에 그 모습 그리면

등대불만 깜박이네 눈물의 연평도

 

사라호 태풍은 1959년 9월 12일에 발생해 9월 17일에 경남 거제도에 상륙했다. 9월 17일, 이날은 명절 추석이었다.

 

사라호 태풍으로 비극적인 추석을 맞게 됐다. 전국에 사망 849명, 부상 2533명, 실종 206명으로 이재민 총 37만 3459명이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국민을 대상으로 12월까지 모금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사라호 태풍은 지금도 경상도 지역 70대 이상 어르신들에게는 최악의 태풍으로 기억된다.

 

 

보통 태풍의 진행 방향 오른쪽이 왼쪽보다 피해가 큰 편으로 남부지방에 피해가 큰 편이었다.

 

연평도와 덕적도에 태풍 피해를 준 것은 1958년 발생한 그레이스 태풍이다. 태풍 그레이스는 1958년 8월 29일 미국 괌 섬 해상에서 발생해 한반도를 강타했다.

 

태풍 그레이스 최대풍속은 85m/s에 이르렀고 최대 중심기압은 905hpa이었다. 태풍은 이재민 1만 3477명과 263억 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태풍 그레이스에 인천 덕적도를 지나가 새우잡이 배들은 태풍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며 소형 배들은 바람에 이끌려 북한으로 넘어가게 된 사람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한국재난뉴스, https://www.hjnews.co.kr).

 

동아일보(1962년 8월 18일자)에는 ‘사나운 태풍 오팔은 연평도 해역에서 어로 중인 어부들에게 인명을 빼앗아 갔다’고 보도됐다.

 

동아일보(1962년 8월 27일자)에는 ‘연평도 부근에서 어로 중 태풍으로 조난한 남한 어부 143명과 어선 27척이 북한 해주항으로부터 어선과 함께 귀환했다’고 보도됐다.

 

덕적도에 사는 송은호 어르신은 “1958년 9월 4~6일 태풍 그레이스가 덕적도를 중심으로 지나가는 바람에 새우잡이 배들이 태풍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지. 배가 부서지고 조그만 배들은 바람 따라 쫓아가다 보니 북한으로 넘어 간적도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과거 사건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사고한다고 한다.

 

사라호 태풍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큰 태풍으로 인식돼 있는 것처럼 1964년 ‘눈물의 연평도’ 작사 당시, 사라호 태풍 피해가 워낙 커서 연평도 태풍 피해도 사라호 태풍이라고 간주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눈물의 연평도’ 작사자는 강남풍으로 나오는데, 강남풍 씨는 음반회사 신세기 레코드사 사장 강윤수 씨가 사용한 예명이라고 한다.

 

원래 작사자는 김문응 씨이며, 사단법인 한국음악저작원협회에서는 ‘눈물의 연평도’ 저작자는 김문응 씨로 등록돼 있다.

 

김문응 씨는 1916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나, 시인 윤동주와 항일운동가 송몽규 등과 같이 연희전문 동기생이었다고 한다.

 

분단 전에는 평양국립가극단 전속작가였고 6.25 전후 월남하여 ‘방랑시인 김삿갓’, ‘눈물의 연평도’, ‘수덕사의 여승’, ‘눈물의 한탄강’, ‘독도의 섬지기’, ‘항구의 이별’ 등 주옥같은 노래를 작사했다.

 

1980년대 대학가 노래패에서 부르기 시작한 ‘사노라면’ 노래는 구전가요로 알려져 왔으나, 김문응씨 가 작사하고 길옥윤 씨가 작곡한 노래로 밝혀졌다.

 

김문응 씨 작사를 보면 ‘이별’이나 ‘희망’이 주요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다. 아마 자신도 실향민으로 이산가족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글 : 김용구 박사(인천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인천시 섬발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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