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고성] 보수주의란 무엇인가

2024.09.03 06:00:00 13면

 

1789년 7월 14일 프랑스의 성난 민중들이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했다. 세금인상을 위한 형식적인 삼부회에 동원된 평민대표들은 사제들과 귀족층의 일방적인 회의결정에 분노해 민중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의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혁명의 열기는 구체제의 파괴를 명분으로 왕과 왕비를 처형하는 등 극도의 공포정치로 이어졌다.

 

영국은 프랑스보다 먼저 시민혁명을 달성해 의회정치가 일찍 자리를 잡은 나라였지만 혁명 소식은 바로 전달되었다. 그때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 의회에서 성공한 정치인이었던 에드먼드 버크는 이 사태를 예의 주시했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가 영국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급격한 변혁보다는 검증된 과거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지지했다. 그는 영국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프랑스처럼 혁명적 변혁보다도 우수하다는 논지의 글을 썼다. 그 글이 유명한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이었다. 여기서 버크는 보수주의(Conservatism)라는 정치사상을 창조해 냈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결코 변화를 거부하는 사상이 아니다. 한 사회의 문명은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이 결합해서 만들어낸 전통적 도의와 관습의 힘으로 완성되기에 그것을 지키고 새로운 가치가 추가되면서 발전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버크는 프랑스혁명이 전통을 파괴하여 사회를 피폐화시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로페스 피에르와 나폴레옹의 독재는 분명 부정적인 결과였지만 혁명을 통한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완성은 성공이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이후 전 세계 정치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정치는 점진적 개혁을 상징하는 페비안니즘이 자리를 잡았고, 나라마다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등장했다. 이들의 특징은 전통적 가치의 옹호와 대외적으로 자국 우선주의였다. 오늘 대부분 국가가 취하는 국익 우선주의는 전적으로 보수주의의 영향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대외문제에 관해서는 한결같이 자국 우선주의인 것처럼 보수를 표방하는 모든 나라의 공통된 인식이고 결론이다.

 

우리도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도, 언론도, 시민단체도, 보수 국민도 있다. 특히 분단의 극심한 이분법하에서 더욱 노골적이었다. 이들은 타국처럼 전통을 중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짓말이다. 국익은 대한민국의 국익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국가를 더 배려하고, 그들의 마음을 걱정한다. 연일 친일발언 경쟁하고, 국내 투자보다는 미국 투자에 열을 올리고,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지지하고, 미일외교 외에는 없는 듯해도 언론은 이를 지적하기보다는 오히려 응원하고, 이익을 얻은 위장 시민단체는 무조건 찬양하고, 생각 없는 국민은 무차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곡학아세하는 지식 판매꾼들만이 득세하는. 세상에 이런 보수주의는 없다. 이들에게는 전통적 가치는 고사하고 역사, 민족주의, 민족의식, 국토 존중의 정신마저도 의심스럽다. 그런데도 그들이 한결같이 자신들은 보수란다. 보수의 의미도 모르면서 보수를 참칭한다. 안타까운 것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무조건 지지하는 진짜 보수를 사랑하는 국민이다. 더는 속지 말아야 한다. 보수주의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가 제대로 구현되어야 대한민국이 산다.

임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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