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꼽히는 볼로냐(Bologna) 대학이 1088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936년이 된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대학은 꾸준히 늘어나 2023년 기준으로 2만 6000여 개 교나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 가운데 좋은 대학도 많고, 좋다고 하는 대학 또한 많다. 여기서 ‘좋은 대학’이란 평범한 고졸 출신이나 그에 준하는 자격을 가진 학생들(고졸 검정고시 합격자)을 선발하여 대학에서 열심히 잘 가르쳐서 쓸모 있는 사람으로 졸업시키는 연금술을 구현하는 대학을 말한다. 이 연금술은 중세기에 납을 금(gold)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뜻한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그저 그런 학생들을 받아들여 바람직한 교육을 통해 유능한 인재(人材)로 변모시켜 내보내는 대학을 의미한다. 반면에 ‘좋다고 하는 대학’은 명문대학이다. 명문대학은 이미 세상에 잘 알려져 지원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자녀가 합격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대학이다. 그런데 명문대학에 입학한 인재(人才)들이 범재(凡才)가 되어 대학 문을 나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를 두고 연금술과 배치되는 ‘역연금술’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좋다고 하는 대학이면서 좋은 대학도 많다. 대체로 좋다고 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학생들은 성적이 우수하다. 명문대학은 학생 모집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든다. 이러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그냥 평범한 학생으로 변모시켜 내보낸다면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효용성 측면에서 볼 때, 소비적이고 비효율적인 대학이다.
좋다고 하는 대학에 소속된 교수들은 교수(teaching)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다. 명문대학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공부하며 졸업과 동시에 대체로 그들이 원하는 분야에 취업하거나 국가고시에 합격하기 때문이다. 그 외 다른 학생들은 해외 유학을 떠나거나 국내 대학원에 진학한다. 소위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고등학교까지는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또래에 비해서 학력(學力)이 월등하고 지능지수도 높다. 지능과 학업성취의 공통점은 주어진 문항을 빨리 풀고 누가 정확하게 반응하느냐를 측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능이 좋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국가고시에 합격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은 것이다.
고위공직자들 가운데 좋다고 하는 대학 출신들이 필자가 말하는 좋은 대학 출신보다 훨씬 많다. 그들은 학교 교육에 잘 길들어졌기에 ‘정답 찾기’, ‘답 고르기’ 방법에 아주 능하다. 단답형이나 선다형 문제, 더 나아가서 주관식 문제 등 ‘답하기’에는 너무나 익숙하다. 그러나 ‘질문하기’에는 훈련이 안 되어 서툴다. 왜냐하면 질문하기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도 않고 시험에 출제되지 않으므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고위공직자 중에는 유연성이나 융통성이 없고 독선적이며 즉흥적으로 판단하고 의사결정 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좋다고 하는 대학은 더러 있어도 좋은 대학은 별로 없는 데에 있다. 진짜 좋은 대학이 되려면 질문을 근간으로 하여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물질과 제도, 정신적인 가치 등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창의력)을 길러주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든 것들은 대부분 질문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력에 비해 안타깝게도 노벨평화상과 노벨문학상을 제외하고는 여태껏 노벨과학상과 노벨경제학상 분야에서는 단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인재를 받아들여 범재로 변모시켜 내보내는 좋다고 하는 대학보다는 범재를 받아들여 인재로 길러내는 대학이 진짜 좋은 대학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교육은 역연금술이 아니라 연금술이 되어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