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이맘때면 농협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농업과 농촌에 대해 곰곰이 되돌아보게 된다. 먼저 영농현장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 구슬땀을 흘린 농업인들과 농촌지역 조합장님들이 떠올려진다. 그러면 도시농협의 역할을 좀 더 잘 수행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또한 농협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조합원님들을 모시고, 각종 사업 추진 성과를 살펴보는 자리를 통해 우리 농협이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도 생긴다.
나는 이사조합장으로서 농촌지역 조합장들과 다양하게 교류하며 소통하고 있다. 농촌지역 농협은 은행업무라고 일컫는 신용사업과 농산물 생산과 판매 등의 활동인 경제사업, 그리고 농업인조합원들의 복지와 영농기술 전수 등의 지도사업이 유기적으로 엮여 활기차게 돌아간다. 그런 복합적인 일들을 마술사처럼 지휘하는 조합장님들을 뵐 때면 참으로 남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농업·농촌에서 일어나는 여러 고충도 들을 수 있다. 제일 큰 문제가 농촌 인력의 고령화와 인구감소, 그에 따른 인력 부족 현상이다. 내년이면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고 하니 농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앞으로 농사는 누가 지을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체에게 먹는 문제보다 더 큰 일이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누군가는 해야 하는 수고스러운 일이다. 그러면 고령 농업인들을 대체할 후계농업인 육성, 즉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단순한 결론에 이른다.
어떤 학자는 “농업은 자연과 인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위대한 예술”이라며 농업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현실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농촌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인력부족이라는 결코 아름답지 않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20년 농림업총조사에 따르면 우리 청년농(40세 미만) 규모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20년 기준 1만 2000명 수준으로 전체 농업종사자의 1.2% 불과하다. 일본 4.9%, 프랑스 19.9%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도 낮다. 정부도 심각성을 알고 있어 국정과제의 하나로 2027년까지 청년농 3만 명을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청년농에게 정착지원금과 저금리의 농업투자자금 융자 등 뒷받침할 방안들도 내놓았다. 농협 또한 다양한 금융지원과 6개월 과정의 농부사관학교를 통해 청년들의 농업유입을 적극 도모하고 있다. 그럼에도 초기 자본부족, 농지구매 애로, 첨단농업 기술 활용의 한계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여전히 존재한다. 여기에 젊은 인구 안착을 위한 생활환경 개선, 주거와 보육시설 확충, 문화 및 여가시설 조성 등 농촌지역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선행 과제도 안고 있다.
농업선진국인 네덜란드와 미국 또한 농업경영인 세대교체를 위해 우리와 비슷한 양상의 지원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그 규모와 지원속도, 방법에 차이가 있다. 그러면 국가는 왜 이런 지원을 하고 있는가. 그건 모두가 다 먹고사는 문제의 근간이 농업이기 때문에 갖는 현상이다. 나는 이와 관련해 물리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농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자부심과 긍지, 보람을 심어주는 사회 전반의 인식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통념의 변화를 통해 농업에 희망이 생기면 구조적인 정책지원이 자동적으로 뒤따르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농사꾼이 아닌 전문 농업경영인으로서 대우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단 뜻이다. ‘밥이 하늘’이라면 밥을 짓는 사람이 존경받도록 해야 함은 당연하다.
녹색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먼 볼로그는 “농업은 평화와 번영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평화와 번영의 열쇠를 청년농업인이 품고 있다고 믿는다. 고령 농업인들이 하던 농사를 젊은이들에게 떠맡길 요량이라면 먼저 그 무대와 여건을 충분히 조성해 줘야 한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농업인 육성에 농업의 미래는 물론 우리 모두의 생존이 달려있다는 절박함으로 말이다. 여러 가지로 바쁜 시기다. 조합 건전결산과 농업·농촌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수척해진 조합장님들께 떠들썩한 청년농업인들의 육성(肉聲)을 들려주고 싶다.
[ 박경식 농협중앙회 이사·안산농협 조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