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사태 이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정국 불안이 지속되면서 원·달러 환율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1450원까지 밀렸다. 불안한 정치상황이 지속될 경우 환율이 금융위기 수준인 1450원 이상을 기록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대거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 대비 7.1원 오른 1434원에 개장했다. 지난 3일 전 거래일 대비 10.1원 내린 1426.9원에 장을 마감했으나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를 앞두고 경계감이 확산하되면서 다시 반등했다.
12·3 계엄 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은 줄곧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1400원대가 굳어지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 3일 야간거래에서 1446원까지 치솟으면서 단기 저항선은 1450원으로 높아졌다.
시장에서는 탄핵 국면이 장기화될수록 환율이 안정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한다. 최근 달러가치가 하향 안정화되는 상황에서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이유가 정치 불안인 만큼, 이 부분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환율이 내려가기는 힘들다는 설명이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원화가치가 급락했는데 다른 나라의 통화가치 변화를 비교해보면 원화 고유의 리스크가 확대된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1450원까지 환율 상단을 열어두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불안정한 정국이 지속되면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1997~1998년 IMF 외환위기, 2008~2009년 금융위기 외에는 겪어본 적 없는 수준이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매주 토요일 탄핵을 추진할 것이라는 소식에 환율이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내다봤다. 외국계 투자은행인 노무라증권은 원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장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고환율 상황이 지속될 경우, 우리 경제에 더욱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유정 하나은행 연구원은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 상승으로 수입 물가가 오르면 소비가 더 위축될 수 있다"며 "수출 업체는 고환율이 채산성에 긍정적일 수 있지만, 수입 업체의 비용 상승을 유발해 긍정적인 효과는 제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출되면, 경제 하방 압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달러 현상이 이어지면서 줄어들고 있는 외환보유액과 관련된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153억 9000만 달러로 지난 2021년 10월 4692억 1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뒤 이후 3년 동안 감소세를 보이며 4000억 달러 초반까지 밀렸다.
특히 강달러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당국이 외환보유고를 헐어 공격적인 시장 개입에 나설 경우 외환보유액 감소 폭은 더욱 커질 수 있다. 한은은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거래 등으로 '컨틴전시 플랜'(상황별 대응 계획)을 가동한다는 입장이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외환스와프 거래도 결국 달러를 국민연금에게 줘야 해 외환보유액 감소 요인이다.
노무라증권은 "한은의 외환보유액 적정성 비율이 국제통화기금(IMF) 모델 기준 평균 93%로 낮은 편"이라며 "외환보유 여력이 하락하면서 원화 약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