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집안의 큰 행사 중 하나가 김장이다.
겨울철에는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워 초겨울에 김치를 많이 담가서 저장하는 풍습으로 지금은 규모가 작아졌지만, 사람들은 지금도 겨울철 숙제처럼 하고 있다. 어렸을 적 김장은 우리에게 놀이였다. 어른들이 일하시는 옆에서 노란 배춧잎에 매콤한 속을 싸주시면 입에 묻혀가며 하염없이 집어 먹다 보면 얼얼한 입을 씻어내기 위해 물 한 주전자를 마셨던 기억과 무의 파란 부분을 잘라주시면 사각사각 씹어먹으면 옆에서 할머니가 ‘무를 먹고 트림을 하지 않으면 산삼 먹은 것보다 낫다’라는 말씀에 어린아이였지만 산삼이 좋다는 것을 알기에 나오는 트림을 입을 꼭 막고 눈가가 촉촉해질 정도로 참던 모습이 새삼스럽다. 예전에 맛있는 겨울 무를 동삼이라고 해서 인삼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겨울에 무를 가지고 음식을 하면 꼭 진한 연두색 부분부터 잘라 입에 넣는다. 겨울철 대표 채소인 무는 아삭한 식감과 시원한 맛이 특징으로 다양한 요리에 활용한다. 겨울철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 중에 소화를 돕는 효소와 면역력을 높이는 성분이 풍부하며, 비타민C가 풍부해 겨울철 감기 예방과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무의 비타민C는 열에 약하므로 생으로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무는 사계절 제철 재료이지만 기온이 내려갈수록 시원하고 달콤한 맛을 낸다.
무에 들어있는 시니그린은 무의 독특한 쏘는 맛을 내는 성분으로 체내 기관지 점막 기능을 강화해 기침 증상을 완화하고, 가래를 묽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목이 건조해지기 쉬운 환절기에 특히 유용해 무를 꿀에 재워 차로 드시는 분들도 계시다. 이렇게 다양한 멋을 가진 무를 이용해 빚은 술이 있었을까.
고문헌 속에 무를 이용한 무술이 등장한다. 먼저 무를 나박나박 썰어 솥에 넣은 후 약한 불로 뭉근하게 끓여 익힌다. 이때 처음에 솥에 눌어붙지 말라고 아주 소량의 물을 넣어준다.
무가 푹 익으면 고두밥과 누룩을 넣어 평소 술빚는 것처럼 빚어 완성하면 채 주 한다. 이 술에는 별도의 물이 들어가지 않고 온전히 무에서 나온 채수만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무를 익히다 보니 특유의 향이 살아나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대안으로 찾은 것이 수박무이다. 겉은 흰색이지만 속은 붉고 아름다운 색상을 자랑하는 무로 ‘수박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속이 연하고 단맛과 색이 고와 샐러드용으로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일단 무에는 비타민C가 많이 있는데 열을 가하면 손실된다고 해서 생으로 얇게 채를 썰어 사용해 무의 시원함과 톡 쏘는 매운맛까지 살려 재료의 특성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이야 다양한 음식 재료로 가지고 술에 사용하는 것이 많은데 그 당시에는 무를 사용했다는 것이 대단한 시도였으리라 생각이 든다. 술을 빚다 보면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좋다.
술이 익으면서 무에서 나오는 붉은빛이 뽀얀 쌀과 만나 연분홍색으로 술독을 가득 채운다. 무의 시원함과 특유에 알싸한 매콤한 맛이 술과 어우러져 한잔의 소화제를 마시는 것처럼 입안에 스며든다. 하얀 술잔에 담긴 연분홍빛 술을 보면 추운 겨울날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