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적인 일상] 12월 31일과 1월 1일

2024.12.20 06:00:00 13면

 

12월 중순, 한 해의 끝자락이다. ‘벌써?’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른들의 말씀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한 해가 지나간다는 사실은 늘 신비롭다. 언뜻 보면 시간은 한 방향으로, 직선적으로 흐르는 듯하지만, 실은 다양한 사건과 감정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내 머릿속 구석구석 기억의 형태로 남아 있다.

 

이맘때면 나는 휴대폰의 달력과 다이어리를 펼쳐본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아무 도움 없이 올해를 떠올려본다. 머릿속에서 저절로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올해 내가 했던 공연, 촬영, 오디션, 그리고 몇몇 긴박했던 순간들. 삶의 주요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하지만 달력과 다이어리를 펼치는 순간, 내 기억의 빈칸이 채워진다. 스쳐 지나갔던 만남들, 여행에서의 사소한 순간들, 지인의 결혼식, 공연 관람, 그리고 무심코 적어둔 나만의 다짐과 고민들. 적어두지 않았더라면 떠올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지금 나의 관심의 방향이 일에 많이 치우쳐져 있어서 그럴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내가 살아온 한 해를 ‘온전히’ 마주하게 된다. 뭔가 놓치고 있었던 내 삶의 조각들을 다시 붙이는 듯한 느낌이다. 매번 그럴 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의 기억은 종종 큰 사건만을 중심으로 저장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라는 사람은 작고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서 진정한 모습을 갖춘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 시간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가장 인간 다운 순간이 아닐까? 삶은 결국 지나온 시간의 궤적을 확인하며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힘을 얻는 과정이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잠시 멈춰 서서 수고했다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그것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 완벽하지 못한 선택을 자책하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실망하며,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을 깎아내린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실체가 없는 기준과 압력이다. 오늘 하루 만큼은 자신에게 올해도 수고했다고, 비록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최선을 다했으니 기특하다고 말해보면 어떨까 싶다.  

 

삶은 마치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같다. 어떤 장면은 선명히 기억되지만, 어떤 장면은 흐릿하게 사라진다. 그러나 모든 페이지는 다음 페이지를 위한 준비가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발자취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올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스스로에게 칭찬을 건넨다. 올해도 잘 버텼다고.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늘 하루 만큼은 자신을 토닥여주기를 바란다. 당신은 한 해를 묵묵히 살아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해낸 것이다.

 

삶은 속도나 성과로 측정되지 않는다. 삶은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기억하고 그 기억에 스스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올해를 정리하며, 당신 자신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하루를 보내길 바란다.

문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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