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적인 일상] 여행을 기다리며

2025.01.21 06:00:00 13면

 

다들 여행을 간다. 침대에 편히 누워 세상 온갖 정보를 접하고 경험할 수 있는 현시대에도, 여행 인구는 늘고 있다. 필자 또한 여행을 좋아한다. 길고 짧은 일정, 국내외 할 것 없이 떠나고 싶다는 갈망이 가슴속에 늘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갈망은 어김없이 여행지에서의 만족감으로 이어지며 여행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여행을 좋아할까?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여행길로 이끄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의 행위일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끼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또 다른 이유로는 낯선 환경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은 호기심과 모험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행은 해야 할 일을 잠시나마 하지 않아도 되는 ‘휴식’의 개념에서 사랑받는 것 같다. 여행이란, 결국 우리에게 ‘지금은 괜찮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라고 다독여주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남들도 그러하듯(아마도) 좋아하는 만큼, 자주 가지는 못한다. 잘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행동과 그 행동을 하는 빈도수가 일치하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운동을 자주 할 테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술을 자주 마실 텐데,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행을 자주 가지 못한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기본적으로 여행이란 소비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금전적인, 시간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다. 여행을 가려면 하던 일을 멈출 수 있는 용기와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일종의 비일상적인 행위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상과 같은 셈이다.

 

그래서 나에게 여행의 의미는 기다림의 즐거움 그리고 위로다. 길게는 반년, 짧게는 한두 달 전에 여행 일정을 잡는다. 그러고서 마치 열매가 익길 기다리듯, 여행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지친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때로, 너무 힘들었던 하루 끝에 예약된 비행기표를 확인하며 ‘이제 xx 일만 참으면 여행 갈 수 있다’라는 말 따위로 나를 위로하는 것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막상 여행을 간 것보다 가기 전의 설렘을 더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만약 인생의 모든 행복이 여행에만 달려 있다면, 이는 결코 건강한 삶이 아니다. 일상에서 행복을 누릴 줄 모른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여행지에서도 진정한 만족감을 얻기 어렵다. 일상에서의 행복과 여행으로부터의 행복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또 여행을 간다.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여행이 내 삶에서 중요한 쉼표와도 같다는 사실이다. 인생이라는 긴 문장을 쓰면서, 나는 여행이라는 쉼표를 찍는다. 이 작은 쉼표는 나로 하여금 다음 문장을 더 가벼운 마음으로 써 내려가게 만든다. 내 삶에 잠깐의 멈춤을 제공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되찾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멈춤 덕분에 나는 일상에서도 조금 더 감사하고,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니 여행이란 우리 인생의 책에 단순한 페이지가 아니라, 다음 장으로 이어지기 위한 숨 고르기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쉼표를 꿈꾸고 있는가? 오늘 당신의 일상에서도 그 쉼표를 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음 여행을 준비하며 설렘을 느끼는 순간, 당신의 삶도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문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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